[칼럼] 이상이 / 제주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이상이

나는 얼마 전에 출간된 나의 신간 ‘이상이, 복지국가의 길을 열다’의 서문에서 내가 왜 의과대학 졸업 후 99%의 의사들이 선택하는 임상의사의 길이 아니라 ‘공중보건과 의료정책’을 전공하게 됐는지를 기술했다. 돈 없는 사람도 필요한 만큼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사회의 ‘공공성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난 20년 이상 걸어왔고, 최근 5년 동안은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담론과 정책을 개발하고 사회운동으로 확산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던 복지국가가 현실화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복지국가의 국민이 될 준비가 돼 있는가. 나는 한 강연에서 “우리 모두가 건강보험료를 30%씩 더 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확충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의료서비스를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폐단이 생길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공적 재원은 우리 모두가 낸 것이지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이기적 생각 때문에 무분별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공유지의 비극’을 예로 든 시장주의자들의 우려에서 잘 나타난다. 이에 대해, 나는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방지할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고, 실제로 유럽 복지국가들은 국가기구를 통해 공적 의료이용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면서도 공유 자원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희소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자기만족을 위한 동물적 충동에 이끌려 결국 자신들의 생존기반 마저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공유 목초지에 경쟁적으로 자신의 양 떼를 방목함으로써 결국 목초지가 완전히 황폐화된다는 설명에서부터 어촌의 공유 어장이 어부들의 욕망 때문에 황폐화되는 사례까지 다양하게 동원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공유 목초지나 공유 어장 모두 사람들의 합리적인 공동체 의식과 정치 및 행정관리 기제에 의해 잘 조정되고 관리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하는 것은 이윤추구 동기에 사로잡힌 주식회사 또는 여타의 공급자들이다.

실제로 공유 어장은 지난 수세기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어부들은 대를 이어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부 어장에서 무분별한 어획으로 공유 어장이 고갈되는 사례가 생겨났다. 문제는 어부들의 경쟁적 욕망이 아니라 저인망 어선을 동원한 주식회사들의 이윤추구 욕망이었다. 공적 의료보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들이 이기적 심성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마구 남용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의료기관들이 영리추구 욕망 때문에 과잉진료를 일삼는 데서 주로 일어난다. 의료서비스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의료이용을 권유하면 대부분 그대로 관철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덕적 해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적·제도적 방지 장치가 있더라도 사회 전반의 공공성 수준이 높지 않다면 도덕적 해이는 언제나 사회문제가 되며,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차창밖으로 담배꽁초를 휙 던져버리는 운전자, 산책로에서 개의 용변을 방치하는 개 주인,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비행기에서 구두 벗는 사람, 지하철에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도 우리사회의 공공성을 해치는 이기적 행동을 한 것이다. 저인망 어선을 동원한 자본의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이윤추구 행태가 우리사회의 공공성을 파괴하듯이,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보통사람들의 행위 또한 공공성을 해친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성찰이 요구된다. 우리는 공공성 높은 복지국가의 국민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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