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영배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 조영배

강정마을에 가보라! 강정천에 이르자마자 경찰들이 길가를 활보하고, 공사차량이 들락날락하며, 전경들이 길가에 길게 배치돼 있는 풍경이 어째 살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살풍경 사이를 조금 더 들여다보라! 너무나 외로워 보이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너무나 애처로워 보이지만, 너무나 특이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또한 너무나 우리 가슴을 울리는, 그래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안으로 삼켜야 하는, 너무나 작은 몸짓을 찾아 볼 수 있다.

강정마을에 어느 사이엔가 상복을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 아무 소리 없이 그저 해군기지 건설 현장의 길가를 따라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그 노인은 굳이 ‘해군기지 건설반대’를 외치지도 않는다. 그저 상복을 입고 묵묵히 해군기지 건설 강행의 현장을 돌며 삼보일배를 할 뿐이다. 어느 누가 이 노인의 삼보일배의 뜻을 모르랴. 상복입은 한 노인의 아무 말 없는 삼보일배는, 수많은 종교인들이 외치는 기도소리나 수많은 시민 활동가들의 시위소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지만, 그 분이 전하는 뜨거운 메시지는 기도소리나 시위소리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상복입은 노인의 삼보일배
강정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오로지 거친 목소리와 거친 몸싸움이라는 방법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강했다. 그러나 2012년 강정은 변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강정사람들 대부분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찬성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또한 반대방법도 다양한 방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한 가지 점을 분명히 했다. 필자의 학문과 신앙양심에 따라 해군기지를 반대하지만, 만일 반대운동이 획일화 돼 또 다른 하나의 독선이 만들어진다면, 그러한 독선적 반대운동 또한 반대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반대운동이 옳다 하더라도 그 운동이 또 다시 하나의 독선적인 힘으로 작용한다면, 필자는 그러한 독선과 획일화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필자는 찬성이라는 한 가지 색으로 강정마을을 덧칠하려고 했던, ‘독선적 찬성자들’을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일방적인 힘으로 반대라는 한 가지 색깔만을 강정마을에 덧칠하려고 하면, 필자는 바로 그러한 ‘독선적 반대론자들’을 거부할 것이다.

다른 존재들의 함께 살기
반대가 아무리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된 반대만이 판을 치면, 그 반대운동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 저지의 성공여부를 떠나 강정마을의 공동체가 회복되며, 새로운 차원에서 강정마을에 생명과 평화가 회복되려면, 획일적인 반대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반대방법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할 것이다.

서로 다름을 포괄하는 것은 21세기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토대가 된다. 종교적으로 볼 때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의 실체와 같다. 악은 주체라는 자기 이익에만 집착한다. 오죽 했으면 욕심이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했겠는가. 이때의 욕심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주체(主體)의 욕심’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오로지 일방성의 죽음만을 낳는다. 때문에 2012년의 강정마을을 지켜보는 우리는, 찬성이라는 일방성과 획일성은 물론 반대라는 일방성과 획일성도 경계해야 한다. 반대의 명분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방성과 획일성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의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설 명절 이후에도, 상복 입은 삼보일배의 노인은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다. 이 노인이 내딛는 첫 걸음은, 반대운동의 의지를 담은 한 걸음일지 모른다. 이 노인의 두 번째 걸음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는 다른 생각들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한 걸음일지 모른다. 또 다시 내딛는 세 번째 걸음은 주체의 욕망을 내려놓지 않으면 모든 정의는 불의로 변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비움을 실현하는 한 걸음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세 걸음을 내딛고 나서 드리는 한 번의 절(一拜)은 아마 서로 다른 모든 존재들의 함께 살기를 기원하는 큰 절일지 모른다.

2012년에 강정마을에 가보라! 거기에는 거친 목소리와 싸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상복 입고 삼보일배하는 한 사람의 노인도 있을 것이다.〈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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