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 일이 벌어지고 있다] 3. 소길리
소 지나는 길 있어 ‘쉐질’로 불리던 소길리
밭과 밭사이 길 원형 그대로 이색 코스화

▲ 이재관 소길리장이 쉐질(잣길)로 들어서기 전, 잣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정임 기자 

소가 지나는 길이 있다고 해서 제주어 ‘쉐질’로 불리던 소길리(이장 이재관)가 마을 정체성이 담긴 쉐질을 무기로 마을 알리기에 나서 주목된다.

소길리는 조선 인종때부터 철종·고종에 이르기까지 ‘소길리’ ‘신덕리’ ‘동정리’ 등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어 기록되지만 현재의 이름 ‘소길’(召吉)이 쉐질에서 비롯됐다는 데에 대체로 의견이 모아진다. 1890년 초부터 소길리로 완전히 개칭됐다. 

소길리에는 아랫마을 구엄리와 중엄리의 소를 방목하기 위해 소를 몰고 다니던 길이 있었다.

밭과 밭 사이로 난 쉐질은 소 한마리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고 제주 해안선처럼 자유로운 곡선이 특징이다. 소가 밭 작물을 먹을 것을 우려해 밭의 지면보다 1m 가량 높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쉐질은 마을 멍덕동산 위 운동장에서 서북쪽을 둘러 옛 리사무소 쪽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비포장 흙길 그대로 남아 소길리 마을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런 길을 소길리가 인근 장전·유수암리 길과 이어 녹고뫼 코스로 만들었다. 앞으로도 길은 계속 만들 예정인데, 우선 이 세 마을의 야심찬 첫 코스의 중심이 소길리인 셈이다.

녹고뫼 코스는 세 마을을 묶어 추진중인 ‘녹고뫼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과 맥을 같이 한다. ‘녹고뫼권역사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개년 동안 총 사업비 69억원(국고 80%, 지방비 20%)을 연차적으로 지원받아 목장·오름 등을 자원으로 한 생태체험·휴양 등의 주민 결정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 이재관 이장.
16일 만난 이재관 소길리장(60)은 “해안·바다를 낀 올레길과 오름을 이은 길은 많지만, 쉐질을 걷는 것은 소길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라고 자랑했다.

소길리에서 태어난 그는 쉐질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했다. 구루마도 없던 때에는 질메를 소 위에 얹고 물건을 날랐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대로조차 포장이 되지 않아 소가 중요한 이동수단이었고, 이 즈음 주민들은 각지불과 등피불을 쓰며 소길리를 지키고 살아왔다.

쉐질을 중심으로 한 녹고뫼 1코스는 지난해 2월 완성하고 10월 개장했다. 장전에서 소길리·유수암리를 돌아 다시 장전으로 가는 11㎞ 구간이다.

이외에 4·3때 지은 성 일부가 남은 멍덕동산 성담과 소길 할망당, 할망당 안의 400년된 팽나무, 600여년전 도굴된 것으로 알려진 현무암 석곽 등도 마을의 중요한 역사 흔적이다. 

▲ 녹고뫼권역개발사업의 로고.
소길리에는 남쪽 부근으로 펜션이 다수 자리해 있다. 지난해에는 제주시의 농촌체험마을 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리사무소 근처에 체험공간을 만들고 풋감염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주민들이 풋감을 심고 오는 8월 수확할 예정이다. 

현재 소길리의 주민수는 지난 9일을 기준으로 364명(154세대)이다. 대개 감귤과 콩 농사에 의존하고 70% 이상이 노인이다. 유별난 경쟁력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담백한 어머니 아버지의 역사 ‘쉐질’을 내걸고 외부인 유인에 고심하고 있다.

녹고뫼권역사업을 추진중인 강세표 위원장은 “마을 남쪽을 중심으로 소길리에 계속 인구가 유입되고 있고, 권역사업이 마무리되면 2~3년내에 외부인이 100~200명 더 늘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제는 외부인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기존 주민들과의 관계를 엮을 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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