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단지 학생과 학교·교육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맹목적인 순위경쟁과 ‘1%’를 정점으로 서열화를 강요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총체적인 산물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식에 대한 가르침 대신에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위한 점수따기 경쟁이 사실상 전부인 학교에서 인성·창의교육은 단지 구호일뿐이다. 학교는 이런 구조에서 탈락한 아이들을 품어안기는 커녕 꺼리고 밀어낸다. 설자리가 없는 아이들의 선택의 폭은 지극히 제한적일수 밖에 없게 된다.
공공의 선과 정의, 공정성과 공평성 등 공동체적인 가치 대신에 부와 권력을 향한 피튀기는 생존경쟁만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우리’가 아닌 ‘나’이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아닌 강압과 이기심이다. 근본적으로 학교폭력 가해학생들도 메마르고 거친 어른들의 사회에서 파생된 피해자들이라는 얘기다.

예방·대응 총체적 ‘구멍’
최근 제주시 한 중학교에서 드러난 피라미드식 상납 폭력은 제주도교육청을 비롯한 제주사회의 학교폭력 예방·대응체계가 모두 구멍났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더불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성인으로 연결되는 폭력의 고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려 40여명에 이르는 중학생들이 짧게는 몇달, 길게는 2년이 넘게 선배들에게 2000여만원에 이르는 돈을 뺏기고 폭행을 당하는 동안 교사도, 학교도, 교육청도, 학부모도 까마득하게 몰랐다는 건 말이 안된다. 장기간에 걸쳐 후배들에게 돈을 뺏은 중3학생은 동네 고교선배들에게, 이들은 성인 선배들에게 피라미드식 상납이 이뤄졌음에도, 피해학생들이 말을 안해서 모른다는 건 학교폭력 예방·감지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보복이 두려워서 말을 못했다는 피해학생들의 얘기는 학교폭력 대응체계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피해사실을 알리면 다시는 피해나 보복을 당하지 않게 확실한 조치가 이뤄진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는 학교폭력을 드러내놓고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감추고 덮는데만 급급해온 교육계의 관행이 자리한다. 도교육청의 ‘학교폭력 대응 메뉴얼’은 피해학생이 담임교사에게 말하면 학교장에게 보고하고, 학교장은 상황을 파악하고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소집해 그 결과를 도교육청에 보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평가 저하 등을 이유로 학교폭력이 덮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가해학생들에 대한 처분도 솜방망이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1년전 집단따돌림에 시달리다 자살한 도내 한 중학생의 담임교사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지난해 3월 친구들에게 돈을 뺏기고 폭행에 시달리던 한 중학생은 전학을 갔지만, 가해학생들은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예방도, 대응도 구멍이 나다보니 죄의식에 대한 불감증속에 집단화·흉포화·저연령화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소통과 믿음을
학교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책은 소통과 믿음에서 출발해야 할것으로 본다. 피해를 당하거나 목격했을때 학부모나 교사·학교 등에 사실을 알리면 확실한 조치가 이뤄진다는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학생들과 교사·학교간 원활한 소통을 통한 학교폭력 예방·감지 체제가 마련돼야 하고,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을 강제전학시키거나 형사처벌하는데 그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오히려 학생에서 성인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고리에 가해학생들을 밀어넣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잘못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조치하되, 공립 대안학교 설립 등을 통해 제도교육의 품에 끌어안아 학교와 사회에 적응할수 있게 이끌어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입시위주의 맹목적인 교육의 틀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공의 선, 공정성 등에 공동체적 가치를 체질화시키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다양한 삶의 가치를 추구할수 있는 실질적인 창의·인성교육도 그러하다.

이와함께 폭력은 명백한 범죄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며, 폭력 피해사실을 사실을 감추거나 방관하는 것도 잘못임을 각인시켜야 할것이다. 부와 권력을 향한 약육강식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것도 제대로 된 교육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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