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어록(語錄)의 시대입니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 사회관계망서비스)의 확산속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마디로 대중들의 소통과 공감, 그리고 행동을 불러오는 일이 우리사회의 ‘현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엔 위대한 인물이나 지도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각계각층에서 짧고 힘있는 메시지가 담긴 어록의 생산자들이 ‘아이콘’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여기엔 ‘시대정신’이 담겨있습니다. SNS로 무장한 대중들이 더이상 소수의 권력과 대기업·언론재벌 등이 강요하는 틀에 짓눌리지 않고, 공론의 장에 참여하면서 ‘진정한’ 여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1%가 권력과 부(富)를 독점하는 시대를 벗어나 스스로 공공의 선과 정의, 기회와 분배의 공정성, 보편적 복지를 통한 안전망 확보 등 사회적 룰을 만들어내는 ‘시민권력의 시대’라는 얘깁니다.

지난해 무상급식 논란으로 빚어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로 규정했던 안철수 서울대교수는 ‘힘이 강하면 책임도 무거워진다’는 어록을 남겼습니다. 이 말이 공감을 얻은 이유는 기회의 공정성과 분배의 공평성 등 보편적 가치를 스스로 실천하는 삶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路祭) 사회를 본 이후 이런 저런 방송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 했던 김제동이 ‘웃음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는 말로 웃기지도 않는 현실에 한방을 날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일약 ‘청춘들의 멘토’로 떠오른 김난도 서울대교수는 학교와 온라인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힘든 청춘들과 소통하며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과 민심을 거스르는 ‘막말’들은 소통과 공감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기도 합니다. “내가 대통령일때 경제위기를 두번 맞아서 다행”이라는 등 고물가와 실업 등 심각한 경제난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고통을 남 얘기하듯 하고, 측근들의 비리가 속속 터져나오는데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화법이 그러합니다.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가 무산되자 ‘사실상 승리’라고 강변하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완패한 10·26 재보선을 두고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했던 홍준표 전 한나라당대표의 어록도 이에 못지 않겠지요.

우근민 도지사가 새해 시무식부터 제주도가 ‘닥치고 투표’에 ‘올인’했던 세계 7대경관 선정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핏대를 올렸다지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제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냐” 고 말입니다. 다음날 확대간부회때는 “트램(노면전차) 논란이 확산되면 중앙정부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지 못할수도 있다”거나 “해군기지에 대한 비판적 여론으로 강정마을 예산 반영이 쉽지 않을수도 있다”며 언론에 대한 불편한 심사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우 지사의 이런 얘기들이 공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정당하고 떳떳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주참여환경연대가 7대경관 지출 예산을 공개하랬더니 세부내역이나 증빙자료도 없이 경상예산 30억2000만원만 덜렁 내놓는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요. 도·제주관광공사와 범국민·범도민추진위원회 등의 홍보비·추진사업비·운영비를 비롯한 지출액 세부내역과 증빙자료들을 떳떳하게 내놓는게 상식일텐데 말입니다. 논란이 많은 투표전화비 내역은 요금이 나온후에 공개한다 해도, 준조세나 다름없이 거둬들인 투표 기탁금 내역과 이 캠페인을 벌인 도내 ‘유력언론사’들에겐 어떤 보상을 했는지도 투명하게 밝혀야 하지요.

게다가 “1월말에 전화요금이 나올 예정인데 왜 벌써부터 200억원이다, 400억원이다 하느냐. 전화요금 빌리러 안다닌다. 도 예산으로 지불할 것”이라는 큰소리는 도민들의 혈세로 만들어진 공공의 예산을 쌈짓돈 처럼 여기는 발상법이고, ‘주인’인 도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유네스코 3개왕관 차지했고 세계7대경관 선정으로 미래비전을 도민들에게 심어주자는 것인데 뭐라고 자꾸 따지냐”고 하기에 앞서 1조몇천억원이라고 하는 7대경관 선정 파급효과를 어떻게 입증하고, 도민들을 이해시킬 것인지 고민하는게 순서입니다. 해군기지나 트램 문제도 언론에 짜증낼게 아니라 제대로 된 소통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요.

세상은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민권력의 시대로 저만치 앞서 가는데 제주도와 제주도정의 시계추는 왜 이리 굼뜬지, 새해맞이가 안타까운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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