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활사 이삭줍기

<80>까마귀를 보고 흉풍을 가늠하다

제주도에는 텃새와 철새 두 가지의 까마귀가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텃새 까마귀를 보고 흉풍을 가늠한다. 어떻게든 흉풍을 가늠해 굶주림을 이겨내려고 애를 쓰다가 보니, 까마귀의 민속생태까지 알 수 있게 됐던 모양이다. 평대리(구좌읍)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온 한윤혁씨(1920년생·남)의 까마귀 민속생태에 대한 가르침을 소개한다.

▲ 제주도의 텃새 큰부리까마귀 (촬영 김완병·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흉년 예상되면 한 마리만 부화
까마귀는 삼월삼짇날에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4∼5개의 알을 낳는다. 까마귀는 이때 올해의 흉풍을 가늠한다. 그 결과에 따라 까마귀 새끼의 숫자를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금년 흉년이 들 것으로 가늠했을 경우, 한 마리만 부화시킨다. 나머지 알은 주둥이로 굴려 땅바닥으로 떨어뜨려버린다. 금년 풍년이 들 것으로 가늠했을 경우, 새끼 두 마리를 부화시킨다. 그리고 금년이 가뭄이 들 것으로 가늠했을 경우, 새끼 세 마리를 부화시킨다.

흉년이 들 것이면 새끼 한 마리, 그리고 풍년이 들 것이면 새끼 두 마리를 부화시킨다. 이해가 간다. 그런데 가뭄이 들 것이면 왜 세 마리의 새끼를 부화시킨다는 말일까.

가뭄이 심하면 땅 속에 숨어사는 벌레나 지렁이 따위가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지상으로 나온다. 그러면 까마귀의 먹이는 풍년이 들 때보다 더욱 풍성하게 된다. 그래서 가뭄이 예상되면, 풍년이 가늠되는 때보다 더 많이 새끼를 친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자랑하는 속담 전문가 고재환 박사가 발굴하고 해설한 제주도 속담에는 다음과 같은 까마귀 관련 속담이 있다.

“까마귀새끼 짝 맞인 헨 풍년 들고, 짝 글른 헨 숭년 든다(까마귀 새끼 짝 맞은 해는 풍년 들고, 짝 어긋난 해는 흉년이 든다)”. 고 박사는 이 속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여기서 짝이 맞은 해는 까마귀가 새끼를 두 마리 깐 해이고, 짝이 어긋난 해는 까마귀가 새끼를 한 마리 또는 세 마리를 깐 해이다. 즉 짝수인 두 마리면 비가 알맞게 내려 농사에 풍년이 들 징조이고, 홀수인 한 마리이면 가뭄이 들고, 세 마리이면 홍수가 나서 농사에 흉년이 들 징조라는 말이다(『제주도속담사전』, 제주도, 1999).

▲ 제주도의 철새 떼까마귀(2011년 3월10일, 구좌읍 송당리 대천동·촬영 김완병·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떼까마귀들이 팽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떼까마귀를 ‘바람까마귀’라고 한다. (촬영 김완병·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100일간 새끼 돌봐
까마귀가 새끼를 세 마리를 까는 해에 대한 해석은 대조적이다. 한씨는 ‘가뭄’이고, 고 박사의 자료는 ‘홍수’다. 그러나 자연재해 현상이라는 점은 상통한다. 이러한 흉년이나 풍년, 그리고 가뭄(또는 홍수) 때 까마귀가 새끼를 치는 숫자가 달랐음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까마귀도 석 달 열흘이 지나면 부모의 공을 갚는다”는 속담을 살펴보자.
까마귀는 5월 단옷날 둥지를 떠난다. 이런 모양을 “까마귀 새끼 내리운다”고 한다. 오월 단옷날부터 100일 동안은 어미 까마귀가 새끼 까마귀를 먹여 살린다. 새끼 까마귀들은 돌담 위에 앉아서 어미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렇게 돌담 위에 앉아 있는 새끼 까마귀의 숫자가 시절(時節)에 따라 달랐음을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이것으로 어미 까마귀의 부양 의무는 끝난다. 이제부터는 어미 까마귀가 돌담 위에 앉는다. 그러면 성장한 자식 까마귀들이 먹이를 물어다가 어미까마귀의 입에 물린다. 그래서 “까마귀도 석 달 열흘이 지나면 부모 공을 갚는다”는 것이다.

나쁜소식 먼저 전하기도
까마귀의 예측 능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이 싸움이 일어날 것도 예측한다. 까마귀는 싸움이 일어날 동네 가까운 곳까지 날아가서 싸움이 날 것을 알리듯이 울어댄다. ‘상(喪)’이 날 것도 예측한다. 상이 날 집을 향해 슬프게 울어댔다고 한다. 요즈음은 집에서 영면(永眠)하지 않는다. 그러니 까마귀들의 영면을 예측하는 울음은 들리지 않는다.

까마귀를 ‘영물(靈物)’이라 일컬음도 이 때문이다. 영물인 까마귀도 실수를 한다.『표준국어대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실려 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먹었느냐)”라고 말이다.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사람을 놀리거나 나무랄 때 쓰는 속담이다.

제주도에서 이에 대응하는 속담은 “까마귀 구름 가늠하듯 한다”다. 다음은 고 박사의 속담 해설이다.
옛분들의 말에 의하면 까마귀는 먹이를 물어다가 감춰 둘 때 하늘에 있는 구름을 징표로 삼는다고 한다. 그랬다가 나중에 그 감춰 둔 먹이를 찾으려고 징표로 정한 구름을 찾으면, 그 구름이 그냥 있을 리 없다. 그 결과 모처럼 감춰 둔 먹이를 영영 잃고 만다.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일처리의 우둔함을 나무라는 말이다(『제주도속담사전』·제주도·1999).

제주도에서 전승하고 있는 “까마귀 구름 가늠하듯 한다”는 것은 어떠한 물건을 놓아두고도 까마귀처럼 잊어버리기를 잘한다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는 속담과 같은 내용이다.

한 해의 흉풍의 가늠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절박한 문제였다. 그래서 까마귀의 생태를 통해 흉풍을 가늠하는 민속지식도 터득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인간의 생태는 변하고 있다. 그러면 까마귀의 생태도 변하게 될 것인가. <고광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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