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올해 예산이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사실상 전액 삭감됐다. 정부가 제출한 1327억원 가운데 육상설계비 38억원과 보상비 11억원 등 49억원만 반영되고 1278억원이 삭감된 것이다.

이처럼 해군기지 예산이 전면삭감된 것은 무엇보다 국방부와 해군이 국회 예산승인 부대조건인 민군복합형 기항지가 아닌 대규모 해군기지를 강행해온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 여당조차 예산 삭감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해군기지 소위 등을 통해 강정항이 15만t급 크루즈선박은 고사하고 대형군함도 접안이 어려울 정도로 엉터리로 설계됐고, 제주도와 국방부·국토해양부간 기본협약서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과 해군기지 이중으로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군기지 입지선정 과정에서부터 절대보전지역 해제 등 절차적 정당성,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와 협의내용 불이행, 편·탈법적인 문화재 발굴조사 등 총체적인 문제들도 그러하다. 특히 평화와 인권, 환경의 가치를 지키려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평화비행기 등 해군기지 반대 운동 지지자들의 연대 확산과 세계적 이슈화도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우근민 도지사가 심혈을 기울여온 해군기지 주변지역 발전계획 지원예산도 요구액 422억원 가운데 23억원만 반영됐다. 해군기지를 수용하는 대신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확보해서 지역발전을 꾀한다는 ‘윈 윈 해법’의 기조가 무너진 것이다.

국회의 해군기지 예산 전면삭감의 뜻은 국회와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을 무시하고 일방통행해온 국방부와 해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예산 1516억원 가운데 집행하지 못해 이월된 1084억원과 올해 예산 49억원으로 해군기지 사업을 강행하려는 ‘꼼수’나 부릴게 아니라, 최소한 국회가 의결한 민군복합형 기항지나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사업의 틀을 바꾸고 제주도민과 제주도·도의회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주변지역 발전계획 지원이라는 ‘당근’에 집착해온 제주도정의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 해군기지가 제주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하고, 사업 추진이 불가피하다면 해군기지가 아닌 기항지로 명실상부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될수있게 해서 주민들을 설득해야 소통이 이뤄진다.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헌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뽑은 이유를 제대로 헤야려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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