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담>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괜당문화’ 구조화가 지역의 하향평준화 요인

청정제주 자연자원 부가가치 창출 가능성 무궁무진

대규모 개발 그만… 주민 주체 ‘소규모 다각개발’로

 ▲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은 이른바 ‘괜당문화’를 제주의 발목을 잡는 근원으로 지목한다. 혈연·학연·지연에서부터 각종 친목·집단 등을 아우르는 ‘패거리’ 행태가 지역사회를 지배하면서 능력있는 지도자를 키우지 못하고, 하향평준화를 강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자본주의 시대, 문화경제 시대에 맞는 제주의 ‘포지셔닝’과 행정에서부터 사회전반에 걸친 투명성·공정성이 고 이사장이 내놓는 새로운 제주를 위한 ‘키워드’다.

● 세계화·지방화 시대에 제주의 정체성, 제주다움의 보전 필요성이 얘기되고 있다. 제주다움이란, 그리고 제주다움을 훼손하는 요인들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천혜의 청정 자연환경을 갖고 있고,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다. 독특한 문화와 육지와는 차별화된 여러가지 생활양식이나 가치관도 있다. 이런 부분들이 총체적으로 모여 제주다움을 형성한다. 1970년대 이후 심화되는 물질만능주의가 제주의 정체성을 헤치는 요인이 됐다. 더불어 각종 선거, 특히 도지사 선거를 둘러싼 줄서기·줄세우기 등의 행태로 공동체 문화가 허물어지고 지역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가 갖고 있는 최고의 경쟁력은.
21세기는 자연자본주의 시대다. 자연환경이 돈이 되는 시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제주의 경쟁력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무수한 담론이 이어지고 있다. 개발도 필요하지만, 무게중심의 축은 보존쪽으로 가야한다. 최근 올레꾼들을 비롯해 생태체험 관광객들이 급증하면서 삼다수 등 제주 특산품들이 호평을 받고 있고, 중국에선 상류층 인사가 제주에 갔다오지 않으면 촌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주대 총장시절 감귤껍데기로 비타민 상품을 만들었는데, 1년에 15억원 넘게 팔리기도 했다. 청정 자연환경을 활용해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등 제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등 급변하는 주변정세와 한미FTA 등 개방경제하에서 제주의 ‘포지셔닝’ 전략은.
김정일 사망은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다. 공산주의 체제의 1세대가 몰락하면 다음 정권은 강경군부가 들어서지만, 과도기적이며 궁극적으론 개방체제로 가게 된다.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군부집단이 일정기간 자리를 잡겠지만 오래갈 수는 없다. 완전한 통일이 아니더라도 준통일에 가까운 시대가 빠른 시일내에 올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도 이런 전환점을 계기로 민족의 미래를 열어갈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대한민국은 동북아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한미 FTA로 감귤을 비롯한 제주 1차산업에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 그러나 개방은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만큼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1차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당분간은 어려울지 몰라도 제대로 준비하면 분명히 경쟁력이 있다. 낙관주의적으로 보면 FTA가 제주 1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다. 1차산업에서 탈락한 사람에 대해서는 전업할 수 있는 플랜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제주지역 최대 현안인 해군기지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데.
해군기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각자의 생각이다. 해군기지는 국책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되는 경우는 아마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해군기지 찬성 주민들이 강정주민들을 대표할 수 있느냐부터 입지선정과 절차의 문제가 그러하다. 민군복합항으로 건설해서 15만t 크루즈선이 정박할수 있게 한다고 했지만,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책사업이면 특별법을 제정해서 지역에 대한 지원을 의무화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정부가 해군기지를 강행하겠다면, 받아올 수 있는 건 다 받아와야 한다. 제주해군기지가 없다고 해서 당장 한반도에 전쟁이 나는 일은 없다. 정부와 해군, 제주도정이 신중하게 접근해서 지역주민들과 ‘윈-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 중국은 관광객·투자유치 등의 측면에서 제주의 최대 타겟시장이고, 국가적으로도 그렇다. 해군기지가 건설돼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에 편입된다면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겠나.
중국이라는 나라는 대국의 면모가 없다. 곳곳마다 영토분쟁을 벌인다. 엄청난 천연가스가 매장된 난사군도를 베트남을 비롯한 주변국가들과 다투고 있는데 이곳은 거리상으로 중국과 가깝지도 않음에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국가안보는 가정법에 입각해서는 안된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미군의 핵잠수함 기지가 된다는 말도 나오는데 여러 가지 변수를 잘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방력은 필요한 것이고, 남북이 통일되면 동북아의 강국으로서 균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내년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7년차가 되지만, 중앙정부와의 공감대 미흡으로 행·재정적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별자치도는 중앙정부와 제주도의 입장이 틀리다. 제주도는 대한민국 발전의 견인차로 보지만, 중앙정부는 특별자치도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시범적 지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큰 덩어리 권한을 안주고 재정적 뒷받침도 안하니 효과가 없다. 참여정부때 동북아시대위원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을때, 제주도의 재정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에 돈을 넉넉하게 지원해줘야 특별자치도를 제대로 해서 국가발전에 효자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웃기만 하더라.

 ▲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 7대 세계자연경관, 관광객 1000만시대 등의 치적주의와 대형프로젝트 위주의 개발사업에 대한 생각은.
지도자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네스코 3관왕이나 세계자연보전총회 등은 제주가 세계환경수도로 가고 자연자본주의를 꽃피워 나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 이제는 대규모 집중개발이 아니라 소규모 다각개발로 가야한다. 골프장들만해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청정 자연환경과 문화 등을 테마로 한 주민주체의 소규모 다각개발이 제주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본다.

● 에너지공사 설립은 어떻게 보시는지. 관광·교육·의료·청정1차산업과 첨단산업 등 제주특별자치도 핵심산업 재조정 필요성은. 
풍력이 과연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지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원칙적으로 에너지공사 설립은 반대한다.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민간에게 넘기는 것이 맞다. 에너지공사를 만드는 노력이면 민간부분이 풍력으로 돈을 벌수 있게 하고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영리병원 도입도 반대다.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다만 특정부문의 의료관광 육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라고 한다. 제주 전통문화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는 없는지.
난타공연을 하는 송승환씨가 제주에서 1년에 18억을 벌었다고 한다. 21세기는 문화경제시대이기도 하다. 제주의 문화콘텐츠는 많은데 아직까지 작가주의적 시각이 강하다. 스토리를 입혀서 팔아먹을 수 있는 상업주의적 시각이 필요하다. 덴마크는 인어공주 하나를 가지고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돈이 되는 문화컨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 2011년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안철수 현상이다. 제주에 미칠 영향은.
대학생들을 만나보면 희망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 일자리도 없고 비정규직이 50%에 육박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리그전만 한다. 안철수에게는 공감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제주도만의 ‘괜당문화’가 안철수 바람을 미풍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제주도 행정구조 개편 위원장을 맡고 계신데, 기본적인 입은.
특별자치도 출범이후 현 행정체제에 적지않은 문제들이 노출됐다.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문제가 간단치 않다. 기초의회를 부활하면 광역의원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도의회 의원들이 찬성하겠나. 중앙정부를 설득시키기가 어렵다. 이러한 조건에서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행정시장은 도의 과장보다도 힘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제주도를 몇개의 시 또는 구로 나눠 권한과 예산·인력을 주는 한편 시장이나 구청장은 주민투표로 뽑고 정책결정과 예산편성 등에 주민들의 참여를 확대할수 있게 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특별자치도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 기초의회는 따로 두지않고 도의회에 특별위원회를 두거나 주민자치위원회를 일본의 ‘근린의회’ 형태로 활성화하면 기초의회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민참여자치 얘기들을 많이 하지만, 실질적으로 정책결정 과정에 주민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지 않나.
제주도가 주민참여자치를 위한 제도들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깨어있는 도민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 결국은 양쪽 다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일본은 기초의회가 없는 곳에 근린의회를 둬서 지역사업계획과 예산 등을 심의한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이런 형태로 바꿔서 기초의회 수준으로 끌어올릴수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면피용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소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주민 참여가 확대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무엇보다 깨어있는 도민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

● 제주도에 공무원이 너무 많은게 아닌지.
특별자치도 출범후에 공무원이 엄청나게 늘었고, 인구에 대비해봐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고 기능을 강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 도지사를 비롯한 제주도정과 도의회, 공무원, 지식인집단과 지역언론 등 지역 주체들의 역할은.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국회에 만족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도의회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지역구 예산 챙기기 등 문제투성이다. 이럴 때 공무원들이 심판관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결국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것은 일반 시민이다. 지역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판관’ 역할을 제대로 하는 지역언론이 몇개나 있나. 좁은 지역특성과 복합적 사회구조가 이런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도자를 잘 뽑아야하고 공무원도 제대로 교육받아야 한다.
 ▲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 이른바 ‘괜당문화’에 대한 생각은. 제주도에선 인맥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얘기도 많다.
제주도에서 연대감이 제일 강한 곳이 마을이다. 마을을 강조하고, 지연·혈연·학연에 이런 저런 집단으로 엮인다. 어떤 사회학자는 제주도민들이 보통 15개정도의 친목단체를 갖고 있다고 하고, 도내에 700개의 비공식적인 단체가 있다. 결국은 괜당문화란 얘기다. 이런 ‘끼리끼리’ 패거리문화가 선거땐 배타적으로 바뀐다. 그러다보니 제주도에는 큰 인물이 안나오고, 보다 많은 ‘괜당’을 거느린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 제주사회가 원숙해지려면 수눌음과 같은 괜당문화의 순기능은 살리되, 역기능은 철저하게 불식시켜야 한다. 괜당문화가 거미줄처럼 구조화된 사회는 지역의 하향적 평준화를 강제하고 21세기형 지도자를 키우는데도 걸림돌이 된다. 인구가 크게 늘고 기업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점차 바꿔지지 않겠나.

● ‘안철수현상’이 던진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다. 소통하고 화합하는 제주공동체가 되려면.
제주도가 의사·정책 결정과정을 투명하게 제대로 된 소통을 통해서 오해가 생기지 않게하고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다.제주 실정에 맞는 복지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의료·일자리 등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모든 일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 이사장을 맡고 계신 이어도연구회는.
이어도연구회는 지난 2007년 제주대 총장시절에 설립했는데, 당시 독도 문제가 컸다. 이어도 해역이 대한민국 영토임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시작하게 됐다. 영토분쟁을 통해 해양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중국에 대응하려면 다양한 연구와 정보 축적이 필요하다. 이어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자연과학적·해양법적 연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해양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를 꾀하고 있다. 영문으로 된 ‘이어도 저널’을 올해 처음 내놓았고, 이어도 개설서 ‘이어도 바로알기’도 출간할 예정이다. 지도층 인사나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을 이어도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사이버 카페나 동호회도 활성화시킬 계획이다. 제주도민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드린다.

● 고충석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 현 제주도행정체제 개편 위원장
- 제주대학교 총장
- 제주발전연구원장
- 제주경실련 공동대표



대담= 오석준 편집국장
정리=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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