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영배 /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 조영배

12월말, 참으로 날씨가 춥다. 매서운 눈발과 차가운 바람이 연말의 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날씨만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도 냉골에 갇힌 느낌이다.

그러나 올해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 따사로운 기운이 꿈틀대는 것 같다. 한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도 작은 씨앗들이 봄을 기다리며 안으로 생명의 호흡을 조심스럽게 내쉬는 것 같이, 매섭고 허허로운 거리로 내몰린 마음과 마음들이 비록 상처를 벌겋게 드러내고 있지만, 그러나 그 상처들 너머로 새로운 생명의 꿈틀거림이 작지만 시작하고 있는 것만 같다. 12월말 강정마을의 풍경이다.

을씨년스런 겨울날씨만큼이나, 지금 강정의 거리와 사람들의 마음은 살풍경 그 자체이다. ‘나와 너’라는 이원론의 틀 안에서 선과 악을 나누고 적대시하는 찬바람이 강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이 겨울 속에서도 봄날의 희망은 작은 이야기를 소근대기 시작했다.

지난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는, ‘강정생명평화교회’ 주관으로 해군기지 반대파와 찬성파 주민들을 함께 초청해 드린 성탄절 예배가 있었다. 예수의 ‘사랑’이라는 가르침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들의 ‘함께 살기’를 생각해 보았고, 또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들의 ‘함께 살기’를 깨뜨리려는 세력들이 문제임을 또한 생각해 보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죽이려드는 것은 ‘불의’이며,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서로 다른 생각을 배척하는 힘들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바로 정의임을 또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찬성파 주민들과 반대파 주민들이 서로를 위해 박수를 보냈다. ‘함께 살기’를 위해 애쓰자는 말에, 다른 생각들을 향해 서로 한 걸음씩 다가서자는 말에, ‘아멘’과 ‘옳소’가 터져 나왔다. 이미 깨어진 마을 공동체가 회복되려면 3-4대는 지나야 할 것이라는 식으로, 공동체 회복을 회피하거나 방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정말 힘들고, 정말 괴롭고, 정말 어색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다가서야 하며, 그렇게 될 때 강정마을 공동체는 이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함께 살기’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또한 ‘옳소’와 ‘아멘’이 터져 나왔다.

필자는 이 예배를 집례하면서,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함께 살기’라는 생명의 씨앗이 대부분의 강정사람들 마음속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해서, 예수라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왔다. 기독교 신자들은 이렇게 믿는다. 그 예수는 이 세상에 와서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것을 우리들에게 요청했고, 그 자신이 그러한 삶을 실천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삶을 ‘사랑’이라고 한다. 그 사랑은 ‘모든 존재들의 함께 살기’와 같다.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상대를 배척하는 것은 ‘함께 살기’라는 사랑의 실천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사랑에는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간에, 자기만 옳다고 하면서, 다른 쪽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는 가차 없이 질책했다. 즉 예수가 유일하게 사랑을 거부한 사람들은 바로, ‘함께 살기’ 그 자체를 깨뜨리려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강정 주민들은 알기 시작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가, ‘함께 살기’를 깨뜨리는 세력들에 대한 거부이지, 단순히 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찬성이나 반대나 간에 오로지 자기 개인의 이익과 자기 공명심만을 위해 상대방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자들은 모두 지탄받아야만 할 대상이라는 것을.

‘모든 존재들의 함께 살기’가 ‘사랑’이라면, 그 ‘함께 살기’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거부하는 것은 ‘정의’이다. 때문에 이제 강정마을에서는 이러한 사랑과 정의라는 방정식이, 해군기지 찬성과 반대라는 벽을 넘으려고 하고 있다. 강정사람들이 진정으로 반대하는 것은 해군기지 찬성파나 반대파가 아니다. 강정사람들은 ‘모든 존재들의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세력들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강정 땅의 사랑과 정의의 방정식은 그래서 ‘함께 살기’라는 생명의 씨앗을 그 답으로 내놓고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지나 이제 곧 생명들이 꿈틀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생명들은 찬성의 것도 아니며 반대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함께 살기’를 위해 애쓴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함께 살기’라는 강정 땅의 생명의 씨앗은 온기를 품고 꿋꿋이 겨울을 견디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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