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승수 / 정보공개센터소장

▲ 하승수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따져야 할 일이 있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다.
벌써 4년 반이 넘었다. 2007년 4월 26일 1900여명의 주민 중에서 불과 80여명이 모인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를 유치하기로 하는 졸속결의를 하면서부터 평화롭던 한 마을은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을향약 조차 제대로 따르지 않은 마을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되고, 정부와 제주도는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밀어붙이면서 강정마을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결정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을주민들은 반대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조상대대로 물려온 땅과 바다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태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동의할 수 없었던 제주사람들도 반대운동에 나섰다. 최남단 제주도에 이지스함을 포함한 전략기동함대를 배치할 이유가 무엇인지 에 대해 정부는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구도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굳이 제주도 최남단에 해군기지를 설치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스스로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제주도에 대 중국 견제용 해군기지가 설치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도 했다.

이런 여러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정부는 해군기지를 밀어붙이기만 할 뿐, 합리적인 설명조차 하지 못했다. 정부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조차 할 수 없다면, 그 일은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다.
결국 반대하는 주민들은 생업까지도 포기해가며 반대운동에 나섰고, 여러 사람들이 구속되고 다쳤다. 제주도 안팎의 시민활동가, 평화활동가들도 해군기지 문제에 매달린 지 오래다. 지난 26일에도 ‘해군기지 공사 전면중단’을 요구하던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 27명이 연행되는 일이 있었다.

과연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문제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제주도 최남단에 해군기지가 왜 필요한지를 정부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안보’를 내세우지만, 설득력이 없다. ‘안보’상의 필요성으로 보더라도, 굳이 제주도 최남단에 해군기지를 설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필요성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군사기지를 설치하기 위해 세금을 퍼붓고, 지역사회에 갈등을 초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해군기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온갖 편법이 동원되고, 최소한의 절차적 합리성도 무시됐다.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사업이 추진됐다. 해군기지 후보지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에다 환경적 보전가치가 높은 절대보전지역이라는 것도 무시됐다.

그동안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여러 해법들이 제시됐다. 천주교에서는 주민투표를 해결방안으로 제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방안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무효로 하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이다.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과 강정마을이 적합한 곳인지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다. 비민주적으로 진행된 절차의 책임자를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뒤늦게나마 국회에서 강정해군기지 문제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해군기지 공사예산 1327억원이 도마에 올라가 있다. 더 이상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 예산부터 삭감돼야 한다.
제 나라 국민에게 설명도 제대로 못하는 안보 사업은 오히려 ‘안보’를 해치는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주해군기지는 공사를 중단하고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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