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민호 / 제주대학교 교수, 교육학

▲ 김민호

제주외국인쉼터에서 1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나는 결혼이주여성이 있다. 이 분을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쯤 추운 겨울 어느 날 장례식장에서였다. 그 때 그녀는 갓난아이를 업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딸 하나를 낳았지만 남편이 지병으로 죽고 말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해 보였다. 경제적으로 두 모녀가 생계를 유지하는 일도 문제려니와 한국 국적조차 취득하지 못한 상태라 바로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나는 올 초, 제주외국인쉼터에서 이 모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아이는 예쁘게 잘 컸고, 한국말도 또렷하게 잘 했다.
그 사이 두 모녀는 시어머니의 배려로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국인 남편과 재혼해 시어머니로부터 독립해 제주시에서 50분 거리의 시골에서 따로 살고 있다. 하지만 감귤 수확 철이면 지금도 산남의 시어머니 댁에 가서 일을 도와줄 만큼 시어머니와는 가깝게 지내고 있다. 시어머니가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자기도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시어머니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재혼한 남편은 제주시 외곽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원을 운영하지만 학생 수가 점차 줄어 이 달 말이면 문을 닫을 것이라 했다. 본인도 사는 곳 인근 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나 5명 정도 밖에 오지 않아 수입이 너무 적어 그만 둔 상태다. 올 초만 하더라도 씩씩해 보였으나 요즘 들어 먹고 살아갈 일을 걱정하면서 얼굴에 불안과 조바심의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사실 이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자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민간단체가 주관한 영어놀이지도사 자격 과정을 수료했고, 모 대학의 관광 가이드 과정(영어통역) 마쳤으며, 작년에는 발마사지협회가 운영하는 교육훈련과정도 수료했다. 또 올해 들어서는 공공기관이 주관한 이중언어강사 자격 과정을 수료했고, 모 조리학원에서 운영한 한식조리사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교육 프로그램 하나도 취업과 연계되지 못한 상태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차라리 다른 이주여성들처럼 식당에 나가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해 월 160만원 정도를 벌까도 생각해 봤지만, 유독 엄마를 잘 찾는 어린 딸을 집에 놔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남편과 함께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몰고 다니며 폐휴지를 모아 파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남편이 창피해서 못하겠다고 거절해서 그야말로 막막한 상태이다.

제주도민의 국제결혼비율이 전국에서 전라남도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결혼을 목적으로 제주를 찾는 외국인의 비중이 높은 셈이다. 그만큼 제주 지역사회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나아가 우리사회의 노동자로서 살아가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앞서 예시한 결혼이주여성의 사례처럼, 단지 이들의 의사소통능력 부족을 탓하며 한국어, 한국 음식을 비롯한 한국문화를 가르치거나 아니면 직업역량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직업준비교육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제주지역사회가 그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의 책임을 여기까지 한정한다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자녀 양육이나 취업 등에서 가족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비교적 괜찮은 조건의 결혼이주여성만이 우리의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 가난하고 남편이나 시댁 식구의 협조가 없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각종 교육훈련을 통한 우리의 주류사회 진입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건강하게 정착하고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면, 이들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능력과 조건에 합당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 각별한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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