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정말 큰일 났습니다. 제주도의 살림살이를 쌈짓돈마냥 제멋대로 주무르는 제주도의원 ‘나리’들과 제주도정, 지역언론을 비롯해 지방권력에 기생해서 ‘떡고물’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는 세력 등 토호(土豪)들의 나팔소리가 커져만가니 말입니다. ‘안철수 현상’과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등을 통해 나타난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을 절감한 정치권이 내년 4·11 국회의원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쇄신이다, 통합이다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땅의 토호들에겐 ‘딴나라’ 얘기인가 봅니다.

밤샘작업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 소위 의원들과 위원장과의 갈등이다 생쇼를 벌인 끝에 지난 16일 제주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 제주도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총 3조763억원 가운데 230개 항목에서 331억원을 삭감해서 예비비 5억3000여만원을 제외하고 무려 770여개 항목에 신설·증액한 ‘작품’의 내용이 어떨지는 대충 ‘그림’이 나오시겠지요.

굵직한 삭감항목들을 보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76억8900만원중 10억7700만원, 제안로 확포장사업 44억4000만원중 10억원,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 86억7800만원중 39억4300만원, 온·오프라인 활용 제주관광홍보 20억원중 5억원, 제주맥주 출자금 66억원중 14억원, 스마트그리드 및 재생에너지 부품 소재업 기술개발사업 15억원중 5억원 등입니다. 산업단지 계획 수립 5억원, FTA 대응 감귤 경쟁력 강화지원 1억원, 감귤 소비확대 해외홍보 1억2000만원,만감류 유통시설 확충사업 4억원, 농어업인 에너지 이용 효율화사업 10억원, 농수산물 산지유통센터 건립 5억2500만원, 감귤식품 클러스터 조성기반사업 10억원, 참다랑어 양식기반 시설 4억8835만원 등은 전액 잘려나갔습니다.

신설·증액된 항목들을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 동지역 중3학생 무상급식비 12억원과 사회복지·1차산업 분야를 제외하곤 태반이 언론사 등의 각종 행사비와 ‘동네예산’들입니다.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하는 백록기 전국고교축구대회는 제주도가 새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1억2000만원을 정액편성했지만 5000만원이 증액됐고, 1000만원인 제주경제대상은 3000만원, 2400만원인 제주관광인 대상도 3600만원을 ‘도로증액’했습니다. 다른 지역신문사가 주도하는 세계지질공원 트레킹 프로젝트에 1억4500만원이 신설됐고, 1억3000만원인 사려니숲길에 5000만원이 증액되고 거문오름 트레킹에 1억8000만원이 잡혀있는 등 자연경관 사유화도 가속화되고 있지요. 여기에 한 지역방송사의 전국 지구력승마대회에 8500만원이 신설됐고,1억5000만원이 편성된 다른 방송사의 전국평화기 태권도대회에 5000만원이 증액됐는가 하면, 다른 지역방송사도 각종 음악회 등의 명목으로 제주도의 예산을 뜯어가는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도 예산 편성·심의에 대한 제대로 된 감시기능을 할래야 할수가 없는 것이지요.

애월·한림·한경지역과 노형동 등 특정지역에 집중 신설·증액된 ‘동네예산’은 주로 마을 안길·농로·배수로 정비, 마을회관·경로당 등의 기능보강과 비품 구입비, 자생단체 행사지원비 등입니다. 애월읍 LNG인수기지 주변마을 주민숙원사업비 3억원을 가스공사나 업체가 아닌 도 예산에 신설한 것도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연결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감귤식품 클러스터를 비롯해 FTA에 대응한 경쟁력 강화사업비와 지방교육 재정 교부금, 스마트그리드와 재생에너지 등 미래산업 관련 예산들을 싹둑 잘라서 지역언론사와 각종 단체 행사비, ‘동네예산’ 등으로 갈갈이 찢어놓는 행태를 반복하는 도의회와 이를 수용하는 집행부,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치부하는 도민사회에 희망이 있겠는지요.

제주대 한석지 교수는 지난 15일 참여환경연대가 마련한 특별강연을 통해 지방자치의 그늘을 설파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지방자치가 오히려 기득권층의 이익을 강화시키고 무분별한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별자치도의 ‘제왕적 도정’과 시장·지역토호가 상호작용하면서 도지사의 독주와 기득권의 득세·횡포, 하향적 정책,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후원·수혜의 구조관계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도민들과 시민사회단체·지식인집단, 제대로 된 언론 등의 연대와 파트너십을 통해 ‘토호 동맹체’를 와해시키는 것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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