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동섭 / 문학박사, 제주도립미술관 운영팀장

▲ 김동섭

이상 기온이라 할 만큼 겨울 같지 않은 날씨가 계속이다가, 며칠 전부터 예년의 기온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일상이 그렇듯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할 것 같습니다. 평생을 그리 살아온 사람도 그렇지만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알곡은 영글어 가고 또 한 계절이 바뀌면 알곡은 단단하고 튼실해지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이어야 하지만 이상 기온이 오듯이, 예기치 못한 일들로 평소와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곤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병원을 찾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병원이나 전문가를 쉽게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어려운 형편에 쉽게 찾아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선인들은 예전 어른들이 해왔던 단순하고 일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돌아와 심방을 찾거나 당(堂)을 찾아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도록 점지해 준 당할망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자손의 가호를 부탁드렸던 것입니다.

대설(大雪)의 절기가 지났습니다.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한해살이의 마지막으로 여느 마을, 여느 집안에서도 지붕일기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마당 넓은 집은 물론 공터가 있는 곳이면 동네 사람들은 ‘호렝이’를 잡고 집줄을 놓아가기 바빴습니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오랜 경험을 가진 어른들은 앉아서 간단을 넣어주면 젊은 사람들은 대통의 손잡이를 한 손에 잡고 또 한 손으로는 공쟁이가 달린 나무막대를 돌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줄이 만들어지면 두 개를 합쳐 하나의 집줄을 놓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필요한 만큼의 집줄을 만들어 두었다가 날을 잡아 지붕일기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철근과 시멘트로 기초를 튼튼하게 할 때와는 달리 예전 초가집에 살 때에는 집안으로 물이 들어오게 되면 집안의 기초가 붕괴될 수 있었으므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사름올림’이라 해, 집 주위에는 뿌리가 튼튼한 양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지붕일기를 할 때면 집줄을 동여매어야 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양해의 순이 나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붕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양해 순이 나기 전에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불개옥(午不改屋)’이라 하여 말의 날에 지붕일기는 피했다고 합니다. 아마 잘 놀라 날뛰는 성질이 있는 말의 날에 지붕을 일게 되면 에기치 않은 일로 지붕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날이 정해지면 지붕일기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는 바람 때문인데 10시를 전후 해서 바람의 일기시작하게 되므로 그 전에 지붕일기의 대강의 큰일을 마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붕일기는 옛줄은 걷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붕에 까진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의 썪은 새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각단 등으로 채워주는 ‘알밖기’로 보완하게 됩니다. 그리고 올해 새로 준비한 ‘새’를 올려 가장자리부터 돌아가면서 ‘지붕새’를 펴게 됩니다. 한꺼번에 전부 새를 펴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 편 다음 집줄을 매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붕새를 펴고 집줄을 묶고 난 다음 가장자리의 새를 호미나 가위 등으로 끝정리를 하게 되면 지붕일기는 전부 끝이 나는 것입니다. 큰 규모의 초가는 4시간정도, 작은 규모라 하더라도 2시간 이상은 걸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새 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사람의 놉을 빌어서 지붕일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음식을 잘 해서 대접을 했을 뿐만 아니라. 품삯도 곱으로 대우해 주었다고 합니다. 돈이 아니면 나중 농번기 때 검질을 메어 주며서 갚아주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올 해 우리 도민 모두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해 왔습니다. 시골의 할아버지에서부터, 유치원의 아이들까지 전화기를 들었고, 문자와 인터넷을 통해 투표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들은 우리 후손들이 100년간은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 <세계 7대자연경관, 제주>를 이뤄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至難)하고 쉽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우리 도민들은 뜻을 모았고 하나를 위해 달려왔던 것입니다. 이제 그 노력의 결실을 우리 도민 모두가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선인들이 살아온 삶의 지혜를 돌이켜 보면 모나지 않는 평범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하지 못함이 병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언제나 당할머니를 찾았던 것처럼 모나지 않은 평범함을 지키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적어도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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