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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ABC협회의 역주행[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신문·잡지부수 공사기구)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문·잡지 등의 매체가 보고한 간행물의 부수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조사해서 공개하는 것이지요. 이 제도의 취지는 언론의 자유와 시장경제원칙속에서 경영·광고의 합리화를 도모하고 불공정거래행위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ABC제도는 1914년 미국에서 시작돼서 인도가 1943년, 일본이 1955년에 도입하는 등 세계 30여개국이 각 나라의 매체·광고환경에 맞게 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9년 세계에서 23번째로 한국ABC협회가 창립되고 1996년 정회원이 됐다고 합니다.

한국ABC협회는 그동안 제도에 대한 인식과 틀이 미흡하고 발행·유가부수 기준에 대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등의 이유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일간신문 부수 인증기구로 지정되고, 지난해 11월 전국 140개 일간지에 대한 공사(公査)를 토대로 2009년 발행·발송부수를 공개했습니다. 올해는 지난달 30일 122개 전국·지역 일간신문의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공개했지요.

문제는 신문시장의 현실과 한국지방신문협회의 문제 제기도 무시하고 말도 안되는 유료부수 기준으로 공사를 하고 일방적으로 공개한데 있습니다. 한국ABC협회의 유료부수 기준은 신문사 본사 입금 여부에 관계없이 지국에서 구독료의 50%만 받으면 되고, 서비스기간을 6개월이나 인정합니다. 지국에서 월 1만5000원 수준인 전국지는 7500원, 1만원인 지역신문은 5000원이상을 1년중에 6개월만 받으면 된다는 얘깁니다. 이는 명백히 신문사들의 독자확보를 위한 출혈경쟁을 조장하는 것이지요.

더욱이 전국지를 배달하는 지국들이 지역신문시장까지 장악하고, 전국지와 지역지를 병독하는 독자가 태반인 실정에서 지역신문 유료부수 산정은 ‘답’이 안나오는 얘깁니다. 신문지국들이 지역지는 독자에게 무료 서비스로 주고 월 1만5000원인 전국지 구독료를 받아서 1부당 1200~1700원정도만 지역신문사에 주면 되는 구조적 모순이 제주를 비롯한 각 지역에 고착화 돼있습니다. 해서 구독료가 월 1만원 수준인 지역지가 실제로는 1200~1700원 수준의 저가품이 돼서 중앙지 구독의 ‘미끼’로 전락한 것이 지역신문시장의 오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한국ABC협회가 ‘미끼’에 불과한 지역신문을 유료부수로 인정해서 되레 끼워팔기를 부추기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 공신력이 있는 것인지요.

이러니 순진하게 전국지와는 별개로 단독으로 구독료를 제대로 받는 부수만을 보고하는 지역신문사들은 그야말로 바보천치가 됩니다. 한국지방신문협회가 문제를 제기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 역시 지난달 한국ABC협회 관계자들이 방문했을때 이러한 문제들을 강력하게 제기하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 기준이 없는 유료부수 공사·공개는 안됨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2010년 6월15일에 창간해서 6개월도 안된 신문의 유료부수를 짧게는 20년, 길게는 50년이 넘는 신문과 같은 선상에서 공개하는 것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나 다를바 없지 않겠습니까. 언론의 다양성과 차별성, 객관성과 공정성 등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싹부터 잘라내는, 철저히 기득권에 편승하는 행태라는 얘깁니다.

언론시장에 뿌리박은 기득권의 그늘은 또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를 비롯한 각종 기관들은 광고를 무기로 공정한 언론시장 질서 형성에 역주행하는 한국ABC협회 가입을 강제합니다. 여론의 다양성 확보와 민주주의의 실현,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이라는 비전을 내세우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우선지원대상’선정은 신문의 논조와 내용에 관계없이 ‘덩치’ 위주로 이뤄집니다.

제주지역만 해도 기자들을 신문사 모기업의 영업에 동원하는 등 신문을 사주의 사업수단으로 삼거나, 교통난이 심각한 지역에 있는 회사부지를 높은 값에 팔기위해 초고층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제주도에 고도완화를 요구해온 지역신문들이 선정됐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지역신문의 공공성을 실현하고 건전한 발전기반을 조성한다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목표가 헛소리가 되는 이유지요.

한국언론진흥재단이라는 곳 역시 우선지원대상 신문사가 아니면 기자 교육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부광고만이 아니라 지자체와 공기업·국립대학 등의 광고를 대행한다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꼬박꼬박 뜯어가고 있지요. 정치판만이 아니라 언론시장도 판을 갈아엎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석준  sjoh@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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