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교육>배움의 즐거움을 찾아라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고

간추려 정리하며

잘 하는 일을 하라

▲ 다산 정약용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꼬집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6년 PISA(OECD주관 세계학력평가)에서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고 우리나라는 2위를 차지했었다.

나라별 순위를 발표하던 날 우리나라 교육관계자가 핀란드 교육관계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근소한 차이로 저희가 졌군요” 그러자 핀란드 교육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핀란드 학생들은 웃으면서 공부해요. 하지만 그쪽 학생들은 울면서 공부하잖습니까?”

학업열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지만 교육철학만큼은 빈곤한 나라. 대한민국. 정말로 우리나라에선 핀란드의 학생들이 갖고 있다는 ‘배우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는 걸까?

[제주도민일보 변상희 기자] 지금으로부터 200년전, ‘배움의 즐거움’을 강조한 교육학자가 있었다. 거중기를 만든 공학자이자 목민심서를 쓴 행정가이기도 했던 조선의 명학자 다산 정약용. 그는 유배지에서의 고단한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제 자식들과 제자에게 배움의 뜻을 전하는 편지를 끊지 않았다.

그중 제자 황상에게 보낸 편지는 이른바 ‘삼근계’로 불리며 유명하다. 학습능력이 없음을 고민하던 황상에게 다산은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낸다.

“암기력이 좋은 사람은 공부를 소홀히 하기 쉽고, 글 재주 있는 사람은 속도는 빠르지만 글이 부실하고, 이해력이 좋은 사람은 반복학습을 하지 않아 깊이가 없다“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의 3가지 병폐를 꼬집은 내용이다. 다산은 이 3가지 병폐를 부지런함과 배움의 즐거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감흥한 황상은 학문에 뜻을 세우게 된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출세의 수단만으로 공부를 해서는 그 ‘참뜻’을 깨우칠 수 없다고 했다. 즐거움이 우선 되어야 하고 즐거움을 갖기 위해선 공부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수백 통의 편지로 제자와 자식들에게 전하던 공부법은 지금의 입시위주 획일화 교육과 거리가 멀다.

다산은 제자 교육에서 개성과 자질에 기초해 전공을 정해줬다. 그리고 서로 다른 교과과정을 두어 학습시켰고 각자의 학습 로드맵(공부법)을 제시했다. 다산이 제자들에게 전한 학습 로드맵은 세속적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닌 내면을 갈고 닦는 공부법이었다. 결과 위주의 공부 한계에 부딪힌 우리나라의 교육철학이 다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다.

다산의 공부법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라
다산은 무슨 일이든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전체 그림을 그리라고 강조했다. 생각의 뼈대를 세우고 정보를 교통정리해야 공부 진행이 순조롭다는 것이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고 공부의 목차가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다산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 공부라고 했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고르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멸하는 일, 복잡한 것들을 갈래를 나누고 무리지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것에서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방법만 배우고 내용은 스스로 채워라
다산은 조선의 국방과 관련한 총서 ‘비어고’ 집필에 앞서 명나라의 국방관련 총서 ‘무비지’를 참고하게 된다. 그는 두 아들에게 명나라의 무비지가 ‘지나치게 방대할 뿐 핵심을 추려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자료 수집을 당부한다. 다산의 ‘비어고’는 명나라 무비지의 기술방식 방법을 참고했다.

하지만 전체 틀이나 세부사항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전례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바꾸고 조정하면서 섬세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다산은 좋은 모범을 찾되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없는 것은 보태고 불필요한 건 걷어내고 부족한건 채우라고 강조했다. 1등의 학습법이 아닌 자신의 학습법을 통해 공부를 해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어라
다산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책을 초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가 집필한 ‘아언각비서’에서도 같은 말이 나온다.
 
다산은 1/4의 노력으로 전체를 장악하는 ‘거인반삼법’을 터득해야 공부의 요령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하나를 통해 증폭되고 확산되는 효율성 높은 공부가 중요하다는 거다. 모두를 알아도 이해와 깨달음없이 하는 공부는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기 어렵다.

△간추려 정리하라
다산은 끊임없이 자식과 제자들에게 읽고 공부한 것을 간추려 정리해둘 것을 요약했다. 정리의 습관이 핵심을 파악하는 힘을 키우고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부분으로까지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공부의 지름길은 없지만 정리하고 메모하는 일만 게을리하지 않으면 헤맬 일도 없다. 또 정리한 공부의 내용이 서로의 네트워크로 형성된다. 무심히 읽고 정리해 둔 내용이 후에 꼭 필요한 공부의 핵심일 수도 있다.

△마디마디 갈라서 낱낱이 파헤쳐라
다산은 늘 문제의 층위를 나누고 갈래를 구분, 복잡한 생각들을 교통정리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른바 층체판석(層遞判析)법. 다산은 문제를 단계별로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도직입보다는 논리를 정리하는 분석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을 잃지 말고 공부의 길과 방향을 명료하게 드러내 이것저것 지식을 마구 섞지 않아야 공부의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여유와 보람을 잊지마라
다산은 일상의 공간을 잊지 말라고 한다. 공부를 하는 일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에도 있다. 아름다운 경치속에서 성품을 기르고 자연과 마주해 마음을 닦으라고 한다. 조이기만 하고 풀 줄 모르면 부러진다는 말이다.

△잘 하는 일을 하라
다산은 제자들에게 카드작업과 받아쓰기, 정리와 필사, 교정과 대조 등 역할을 분담해 다산초당의 작업을 진행했다. 제자들에게 맡긴 역할은 제각각 달랐다. 특기를 살려 각자의 장점을 살려줬다. 다산은 제자들의 특징을 파악해 다산초당의 균형을 이뤄낸 것이다. 모든 것의 1등이 아닌 자신이 잘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해서 기쁘고 안 할 없고, 다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잘 하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꾸준한 공부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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