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토종씨앗지키기’ 시작

초국적기업 종속 차단…자가채종 제도적 장치를

▲ 2011 토종씨앗축제가 26일 제주도농어업인회관에서 열린 가운데 여성농민회 회원들이 정성껏 키워 수확한 각종 토종씨앗들이 전시돼 있다. 조성익기자 ddung35@

[제주도민일보 조성익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 토종벌이 ‘토종벌괴질’에 걸려 전국적으로 집단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구 전체 식물의 3분의 1이 벌의 도움으로 수분하기 때문에,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무섭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보다 더 치밀하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가 있다. 바로 토종씨앗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토종이 없는 종의 다양성은 실로 큰 차이가 있다. 아니 다양성의 근거 자체가 사라진다.

옛말에 ‘농부는 굶어죽더라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그만큼 농사에서 씨앗의 중요성을 말하는 속담이다. 하지만 이미 농부들은 씨앗을 종묘상에 가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다국적 기업의 상품’이 됐다. 그것도 발아가 되지 않아 대를 잇지 못하는 ‘불임씨앗’을 해마다 다시 사야한다.

게다가 올해초에는 국립환경과학원이 옥수수·유채·면화 등 수입 유전자변형농작물(GMO)이 유출된 것을 확인됐다. 게다가 유출된 종자들이 국내 토종종자의 채종포 인근에서 자라고 있어 농업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농부들이 토종종자인 줄 알고 GMO 농작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토종종자들이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 지자,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전국단위로 모아지고 있다.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은 4년전부터 다국적 기업에 의한 장악된 종자시장에서 농업의 종속을 막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다.

올해 초에는 여성농민회원 1회원 1품종 갖기를 위한 ‘토종씨앗지킴이 발대식’을 갖은 후 텃밭에서 키운 씨앗을 갈무리해 지난 26일 농어업인회관에서 토종씨앗축제를 열었다.

이날 축제에 참가한 여성농민회원들은 발대식이 열린 봄에 나눠가진 씨앗들을 텃밭에 파종하고 정성껏 키워 열매를 수확한 57종의 토종씨앗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회장은 “지난 4년 동안 회원들의 노력이 하나 둘 쌓이면서 이제 제법 토종씨앗지키기 운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이 운동이 초국적기업에 의해 장악된 종자시장에서 농업의 종속을 막고,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 우리나라의 토종 유전자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고, 기업이 농업에 진출토록 허용해 대부분 농가들의 생존조차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한 원광대 김은진 교수는 “국제종자연맹에 따르면 2008년 세계종자시장의 규모는 약 700억달러이고, 2010년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종자시장규모는 약 4억 달러로, 식량안보 등의 필요에 따라 점차 종자시장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며 “GM 종자 개발에 따라 생명공학분야가 발달하면서 기존의 유전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유전자자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토종종자 자원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농민들이 자가채종을 통해 토종종자들을 계속생산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런 토종 유전자원들에 대해 재배를 위한 정책과 자가채종에 대한 제도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농업 자체를 규모화하는 방향으로 농업을 다시 재편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농업에 진출토록 허용해, 전통적인 농업을 이어오는 중소농을 비롯한 대부분의 농가들의 생존조차 위협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종자를 지키는 것이 초국적기업에 의해 장악된 종자시장에 농업이 종속되는 것을 막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자는 계속 땅에 심어져야 환경에 적응하는 종자가 만들어지는 만큼 현지 내 보존에 대한 지원책 마련 △자가 생산을 위한 자가채종을 인정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 △농민들이 자가채종해 생물다양성을 유지해온 우리 고유 종자들에 대한 가치 인정 △살아있는 생물체에 대한 다양한 독점을 인정하는 여타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본격적인 재검토 필요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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