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덕정에서 당시 상황의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순례 참가자들
[제주도민일보 김동은 기자] 제주 4.3 63주년을 맞아 지난 4월에 이어 다시 한번 4.3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시간이 마련됐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27일 4.3 63주년을 맞아 연대 회원 및 제주도민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픔이 깃든 역사를 알기 위한 역사순례를 실시했다.

이날 역사순례는 오전 9시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집결해 4.3의 시발이 됐던 '관덕정'을 시작으로 김해김씨 가족묘역인 '김용철의 묘', 면당본부가 있던 '큰곶검흘굴', 잃어버린 마을 '장기동' 등의 순으로 순례가 진행됐다.

도민연대와 순례 참가자들은 첫번째 순례지로 제주역사를 품에 안고 있는 공간인 관덕정을 찾았다. 관덕정은 1947년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나오는 군중들에게 경찰의 발포로 6명의 민간인 희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특히 당시 관덕정 앞을 빠져 나갈 즈음에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이며 쓰러졌고 이에 격분한 군중둘이 항의를 하는 도중 경찰의 발포가 이어졌다. 이 여파로 4.3사건이 발발하는 도화선이 됐으며 무장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가 교전 중 사망하자 그의 시신을 관덕정에 주민들에게 관람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가자는 "평소에 자주 지나가던 관덕정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이번 순례를 통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돼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고 말했다.

관덕정 순례를 마치고 다음으로 조천읍 와흘리에 있는 김용철의 묘를 찾았다. 이곳은 4.3당시 경찰 및 응원대의 활동 근거지로 피의자에 대한 취조와 학살이 자행된 곳이기도 하다.

▲ 순례참가자들은 '김용철의 묘'에서 4.3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3.1절 기념식에 참가한 김용철은 잡혀간지 이틀만에 취조 중 숨졌다. 기미독립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룬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잠들어 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아픔의 현장을 되돌아본 순례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4.3희생자를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또 한 참가자는 김경훈의 시 '고문'을 낭독하며 당시의 아픔을 생생하게 같이 나누기도 했다.

이어 남로당 구좌면당본부가 있었던 큰곶검흘굴의 순례가 이어졌다. 큰곶검흘굴은 초토화 작전 이후 해변마을에서 도피한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숨어 살다가 1949년 7월 경에 발각돼 생포된 곳이다. 이곳에는 중산간에 분포하고 있는 오름과 곶자왈 등 주변지역 지리를 잘 아는 마을주민들이 숨어 살았다고 한다.

당시 구좌면당 책임자였던 정권수는 최후까지 남은 5명의 무장대원들과 함께 있다가 사건 발발 8년 만인 1956년 4월 3일 경찰 토벌대에게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굴은 입구가 304m 절벽아래 위치해 있어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며 많은 동물들이 굴에 빠져 올라오지 못해 죽을 정도로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가자들은 이제는 철조망 틈 사이에서 울창한 숲에 가려져 있는 큰곶검흘굴을 당시의 아픔을 회상하듯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큰곶검흘굴의 순례를 마친 참가자들은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인 장기동을 찾았다. 이곳은 4.3때 마을이 전소돼 잃어져버린 마을이다. 당시 한라산 아래 15가구 40여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았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의 표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최후의 무장대로 불리는 오원권은 이곳 장기동 출신이었다. 마을이 불에 타 없어지면서 주민들은 점점 깊은 산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고 오갈 곳이 없었던 이들은 무장대로 편입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57년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때부터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진압작전이 전개됐다.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해안지대로 내려보낸 다음 무장대가 은신할 수 없도록 중산간 마을 전체를 불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민들은 비참하게 학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4.3도민연대 양동윤 대표는 "당시 마을 주민들은 엄동설한에 살이 얼어붙는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다"면서 "당시 죽음을 동반한 것이나 다름없는 고난의 삶을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피난 주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이덕구 산전을 끝으로 순례를 마무리했다.

▲ 이날 순례에는 어린 학생들도 많이 참가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순례에 참가했던 김진아씨(42)는 "아이들과 같이 참가했는데 아이들에게 4.3의 역사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도민들이 4.3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알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이번 역사순례를 통해 남아 있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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