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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살 가부레기’ 토양에 밭벼 파종하면 농사 망쳐제주생활사 이삭줍기 <73>모래거름 이야기

▲ 고구마 수확(1960년대 촬영·제주농업기술센터) 제주도의 아낙네들이 밭 매는 도구인 ‘골갱이’라는 호미로 고구마를 캐고 있다. 이 밭에도 모래거름을 주었을까.

석회 요구량 높은 밭에만 모래거름 쳐

바다모래에는 석회 성분이 많아서 밑거름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함부로 주다가는 토질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된땅(찰기가 많아 마르면 단단하게 굳어지는 땅)’에는 금물이다. ‘뜬땅(토질이 부석부석하여 찰기가 약하고 보수력이 낮은 땅)’ 중에서도 석회 요구도가 높은 밭에만 밑거름으로 주어야 한다. 석회 요구량은 농사를 짓는데 있어, 넓이 약 300평(10a), 깊이 10㎝의 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석회질 성분의 양(㎏)을 기준에 맞춘다. 전혀 필요 없는 땅이 있는가 하면, 석회질을 525㎏을 주어야 농사가 가능한 땅도 있다. 바다모래 거름을 주면 얼마 동안 밭은 거름기운을 지탱한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토질이 더욱 메말라 버린다. 이럴 때는 같은 밭 안에서도 흙이 비교적 많은 곳의 흙을 파다가 다시 덮어 주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른다.

지난 주(연재 72 제주도 해녀, 모래거름을 캐어내다)에 제주도 해녀들은 잠수해 모래거름도 채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서귀포시 효돈동에 있는 ‘개우지코지’라는 갯가의 경우다. 부인(해녀)은 잠수해 모래거름을 채취하고 남편은 모래거름이 담긴 ‘모살구덕’을 건져 올린다. 이렇게 부부가 모래거름을 채취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모래거름을 어떻게 채취했을까.

한시리 썰물때 ‘모살역시’

▲ 남원리 갯가에 있는 모래거름 어장(1918년 조선총독부 지도를 바탕으로 편집).

[사례1]성산읍 삼달리 강태춘씨(1932년생·남)

이 마을에서는 모래거름을 채취하는 일을 ‘모살역시’라고 한다. 모래 역사(役事)라는 말이다. 음력 2∼3월 중에 마을 ‘분드리’라는 곳에서 모래거름을 채취한다. 이곳의 모래거름은 점심대(漸深帶)에 있다. 한사리 썰물 때에 무릎까지 발을 적시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삽으로 모래거름을 뜬다. 지게 위에 있는 ‘질구덕’에 담는다. 모래거름을 지고 뭍으로 나온다. 바닷물이 빠지게 해변 어느 한 곳에 쌓아둔다. 소의 길마에 모래거름을 지우고 밭으로 운반한다.

[사례2]표선면 하천리 강기추씨(1934년생·남)

이 마을에서도 모래거름을 채취하는 일을 ‘모살역시’라고 한다. 모래거름을 채취하는 곳은 표선리(표선면) ‘한모살’과 하천리(표선면) ‘샛모살’이라는 해변의 모래언덕이다. 모래거름은 오랫동안 햇볕이나 바람을 맞고 소금기가 빠진 것이 좋다. 소의 길마에 모래거름을 지우고 밭으로 운반한다.

‘접모살’ 조직 이뤄 채취

[사례3]표선면 세화리 김경추씨(1920년생·여)

이 마을에는 ‘접모살’이라는 협동 조직이 전승한다. ‘접’은 계(契)라는 말이니 모래를 위한 모임이다. 접모살의 구성원은 10∼15명 정도다. 정월그믐에서 음력 3월 초순 사이에 접원마다 소(牛)와 ‘모살착’을 지참하고 출동한다. 모살착은 모래거름을 담고 길마에 채우는 멱둥구미다. 모래거름을 채취하는 곳은 표선리 ‘한모살’이라는 해변의 모래언덕이다. 접모살의 구성원들은 공동으로 모래거름을 채취하고 농가에 공급해 공금(公金)을 마련한다. 공금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분배한다.

[사례4]남원읍 남원리 김한수씨(1930년생·남)

이 마을에서 모래거름 채취장은 ‘안여’와 ‘쉐느랭이’다. 안여는 이 마을 포구 서쪽에 있는 너럭바위다. 그 주변에 ‘모살안코지·모살원·안여마루’ 등이 있다. 쉐느랭이는 안여 서쪽 ‘쉘락개’와 ‘소롱콪’ 사이에 있다. 안여와 쉐느랭이의 모래거름은 채취방법이 다르다. 안여의 모래거름은 조간대 너럭바위 틈틈이에 있다. 썰물 때 전복껍질이나 맨손으로 모래거름을 긁어낸다. 그리고 쉐느랭이의 모래거름은 5m 정도의 물속에 있다. 쉐느랭이의 모래거름은 여름에 채취한다. 사공과 해녀는 통나무배(터우)를 타고 어장으로 간다. 해녀는 물속으로 들어가 모래거름을 캔다. 모래거름을 캐어내는 도구는 ‘작박’과 ‘모살구덕’이다. 모살구덕 아가리 양쪽에 끈을 매단다. 끈 한가운데 6m 정도의 줄을 묶는다. 해녀는 물속으로 잠수해 작박으로 갯바닥의 모래를 긁어내는 대로 모살구덕에 담는다. 사공은 터우 위에서 모살구덕의 줄을 잡고 있다가 모살구덕에 모래거름이 가득 차면 들어올린다. 모살구덕의 모래거름은 ‘멩텡이’라는 큰 멱둥구미에 담는다. 이렇게 모래거름을 채취하는 일을 ‘모살조문’이라고 한다. 모래는 뭍으로 옮겨 오랫동안 놓아둔다. 소의 길마에 모래거름을 지우고 밭으로 운반해 보리를 파종할 때 밑거름으로 준다.

[사례5]서귀포시 회수동 이동기씨(1916년생·남)

이 마을 사람들은 대포동의 포구 동쪽 ‘검주와리’라는 곳에서 모래거름을 채취한다. 이곳의 모래거름은 점심대에 있다. 옷을 걷어붙이고 물속으로 들어가 삽으로 모래거름을 뜬다. 모래거름을 한 며칠 동안 해변에 놓아두고 물기를 뺀다. 소의 길마에 모래거름을 지우고 밭으로 운반한다.

모래거름은 농경문화 형성에 필수

모래거름을 채취하는 어장은 바닷가 층위에 따라 다르다. 사례2의 표선리(표선면)의 ‘한모살’과 하천리(표선면)의 ‘샛모살’은 해변의 모래언덕, 사례4의 ‘안여’는 조간대, 사례1의 삼달리의 ‘분드리’와 서귀포시 대포동의 ‘검주와리’는 점심대(한사리 썰물 때에 무릎까지 발을 적시고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사례4의 쉐느랭이는 5m 정도의 물속이다.

모래언덕, 조간대, 점심대에 있는 모래거름은 주로 남자들이 캐어낸다. 이를 ‘모살역시’라고 한다. 그리고 수심 5m 정도에 있는 모래거름은 해녀들이 잠수해 캐어낸다. 이를 ‘모살조문’이라고 한다. 모살조문은 제주도 해녀문화 탄생 배경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모래거름은 천연비료이니, 제주도 사람들이 농경문화를 이뤄내는데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모살조문의 분포도를 꼼꼼하게 그려보고 싶다. 그러면 제주도의 생활사의 단면과 함께 제주도의 해녀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원읍 태흥리 김경만씨(1932년생·남)로부터 모래거름의 이용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봄에 쟁기로 고구마 순을 심을 밭을 미리 갈아둔다. 그리고 모래거름을 밭의 전면(全面)에 뿌린다. 소서(7월7일경) 때 다시 쟁기로 밭의 두둑을 만들고 그 위에 고구마 순을 심는다. 한로(10월8일경) 무렵에 고구마를 캐어낸다.

모래거름을 주었던 밭에는 밭벼를 꺼린다. 밭벼가 시들시들 죽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밭의 모양을 ‘모살 가부레기’라고 한다. 가부레기는 모래거름 기운이 다 되거나 오래된 밭을 이르는 말이다.<고광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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