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난 사람 -1] 길내기 막바지에 접어든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주민이 건네는 귤 하나가 바로 올레의 감동
내 첫 목표는 시흥리에서 종달리까지 걸어서 한바퀴
내년이면 코스 완성…남은 건


‘제주올레’ 길 내기가 내년이면 종료된다. 애초 시흥리에서 종달리까지 돌아서 한바퀴를 잇자는 게 목표였다. 20년 기자 생활을 마치고 훌쩍 떠난 산티아고 길에서 고향으로 회향한 지 이제 4년. 그간 서명숙씨는 24개의 길을 냈다.

올레는 이제 세계적 이름이 됐다. 2007년 첫 코스를 개장하면서부터 ‘걸어서 제주의 속살을 만난다’는 컨셉이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언론들은 앞다퉈 올레열풍을 보도했고, 행정과 기업은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올레를 차용한 CF와 유사 트레일 코스도 전국에 생겨났다. 제주올레는 최근 ‘2011 아시아 도시경관상’에서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31일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지역을 선별하는 ‘2011 LivCom Awards’에서 자연부문 프로젝트상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올레의 성공가도와 별개로 점차 콘크리트길이 늘어나는 올레코스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2일 제주시 해안도로 문화카페 ‘닐모리동동’에서 서씨를 만났다. ‘2011 제주올레걷기축제’를 한 주 앞두고 행사준비에 체력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서씨는 쉰 목소리를 연신 내 뿜으며 올레와 고향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다음은 서씨와의 일문일답.

       올레길 표식
● 도심속 올레에 대한 우려가 있다. 당초 ‘흙길만 밟아서 제주 한바퀴’가 목적이 아니었나

제주를 걸어서 한바퀴 도는데, 도심 안 걷고 갈 수가 있나. 처음부터 내 목표는 시흥리에서 종달리까지 걸어서 제주섬 한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목표에서 한번도 벗어난 적 없다.  자연만 제주 정체성의 전부는 아니다. 시장통도 있고, 주택도 있고, 바다를 낀 숲길도 있다. 그 길에서 제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거나 갑작스런 바다를 조우하거나 초라한 뒷골목을 만나게 되는 것. 제주의 곳곳을 걸어서 호흡하며 아는 것이 올레의 정체성이다.

● 도심속 올레에 대한 외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외지여행자들은 17코스(광령~산지천) 끝에 가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14(한림항~저지리)·15(한림항~고내포구)코스를 지나며 밭이나 항구에서 봤던 농수산물들을 동문시장에서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농·어촌이 얼마나 아름답고 깨끗한 지를 직접 보고 걸어왔기 때문에 거기서 생산된 농산품을 바라보는 올레꾼들의 눈길은 사뭇 다르다. 일부 사람들은 14~15코스를 농산물 코스라고도 하더라. 여행자 입장에서는 모두가 소중한 자연요소다.

● 개장 4년째, 행정과 사무국의 업역은 개장 초기와 같나

그대로다. 우리는 여전히 길을 열고 길에 난 풀을 벤다. 땀과 아이디어로 하는 일은 우리가, 화장실을 만들거나 ‘할망민박’을 지원하는 등 예산이 수반되는 일은 행정이 한다.

제주시는 서귀포시보다 올레 길이 늦게 문을 열어서인지 올레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적다. 아쉽다. 14~15코스가 지나는 한림·애월 등지 빈집에 도배와 이불 등 최소한의 지원만 해주고 할망민박을 열면 좋지 않을까. 행정이 하는 ‘희망 일자리’보다 훨씬 희망적일 텐데.

● 올레가 빨리 자리잡은 것 같다. ‘이사장’이 된 후 기자시절보다 더 바빠진 것은 아닌가
 
요즘은 축제를 앞둬서 바쁘지만 평소에는 그리 바쁘지 않다. 인생 전반전에 너무 ‘재기재기’(‘빨리빨리’의 제주도 사투리) 살아서 적어도 올레일 하면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여행을 가봐야 여행자들의 마음을 안다. 책 읽을 시간이 없고 여행 다닐 시간이 없다면 난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일과는 밤 9시 이전에 마치고 자정까지 하루 꼭 2시간 이상 책을 본다.

● 여행을 가봐야 여행자의 마음을 안다는 말은 행정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관광직 종사자들은 자꾸 밖을 다녀봐야 된다. ‘시찰’이 아니라 '여행'을 가야 한다. 두바이나 라스베가스 같은 데 말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암시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으면 좋겠다.

두바이·라스베가스는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라 도박 등의 대안을 내세운 것이지만 제주도는 그렇지 않다. 건축물을 하모니있게 통일해서 성공한 지역이나 자연으로 승부를 보는 작은 섬 등을 찾아가 그들의 문화를 보고 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어떻게 맛집이 소개되고 어떤 기념품이 있는지 보고와 차용해야 한다.

제주도정은 제주가 ‘경관’ 밖에 가진 게 없다며 중국 자본·카지노 등을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는데, 난 제주가 100분의 1도 경관의 맛을 못 썼다고 생각한다.

● 지사들마다 제주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팔 생각만 한다. 제주 자연에 대한 평가는 도민들보다 외지인의 시각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도에서 내놓은 관광정책 결론은 왜 토목공사 아니면 거대한 자본, 거대한 공사 끌어들이기 인지 모르겠다. JDC가 내놓은 경빙장 발상도 안타깝다. 제주는 랜드마크가 한라산이다. 사막에 가서 오일달러가 만든 세계적 랜드마크 보고와서 본 받겠다는 발상은 이제 그만두자. 서복전시관이 실패의 좋은 사례가 아니겠는가. 큰 돈 들여 짓고는 하루평균 5명 관람에 근무직원이 5명. 결국 무료 관광지로 개방하지 않았나. 좋은 관광 소재는 건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 최근의 여행 추세가 관광에서 체험, 단체에서 개별화다. 그 중심에 올레와 서 이사장이 있는데 조언 한마디

청정 제주에서 난 수많은 농수축산물로 우리의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 하는 게 안타깝다. 고기국수도 더 맛깔스럽게 더 많은 부재료를 쓰고 음식도 조림·회 등 여러사람이 모다들엉 먹는 시스템 만으로는 안 된다. 외지 여행자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이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주는 변화와 대응이 느리다.

             올레 패스포트
●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속속들이 다시 들여다 본 제주는 어땠나

내 친구 (한)비야는 제주를 걸을 때마다 ‘만만한 크기의 아름다움’이라고 칭송한다. 타국의 자연이 거대하고 장엄한 반면 인간을 주눅들게 한다면, 제주의 풍경은 사람과 비슷한 크기로서 편안함을 준다.

올레는 제주가 가진 자원의 하나일 뿐이다. 제주의 바람은 생존에는 힘들지만 어쩌다 오는 사람들에겐 매력 그 자체다. 거대 해녀상이다 산지천 인근 광장이다 뭐다 지금 우근민 도정도 다른 지사들처럼 거대 프로젝트를 꿈꾸는 것 같은데 또 어떤 토목적인 실패를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지금 전국적으로도 수백억 돈을 들여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제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약점도 강점으로 전환하려는 발상이 필요한 곳이다. 섬이면서 해양관광에도 너무 관심이 적다.

● 앞으로 올레는 어떻게 변화하나

길은 내년이면 끝난다. 종달리까지 이제 2개 정도 코스만 더 내면 일단 내 목표는 완료된다. 알파코스를 내달라는 말이 많지만 이제 관건은 이미 난 길을 도민들이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 올레축제의 성장 비전은

길에서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게 축제로 간 것이었다. 다만 작년까지의 축제에서 공연·민속 등을 많이 보일 수 없어 이번엔 올레코스가 지나는 마을 주민들의 많은 수가 공연에 동참토록 했다.

외지인들이 길을 걸으며 공연을 보고 제주 음식도 맛보면서 제주를 알아가게 하는 클라이막스가 축제인 셈. 10년 정착을 내다보고 있다. 섣부른 성공보다 그간 주민들이 축제의 노하우를 쌓아 이후 우리 자식들은 올레와 올레축제 하나만 가지고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도록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 올레, 사랑 비결은 뭘까

투박한 귤 하나의 감동이 아닐까 한다. 올레꾼들은 처음에는 제주 풍경에 반했다가 갈때는 사람에 감동해서 간다. 사람이 떠난 마을에 사람이 찾아들면 주민들은 반가움이 앞서 귤 하나를 툭 던진다. 서울에서는 사람이 많아 어깨만 스쳐도 화가 나지만 사람이 지나가면 그 자체만으로 반가운 것. 그게 올레의 감동이다.
글 문정임기자 mun@·사진 박민호 기자 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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