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가 끝났다.

새로 당선된 대표자들의 임기가 곧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도지사, 도의원, 교육감, 교육의원은 특별자치2기를 책임지게 된다.
 

당선자들은 어려운 숙제들을 짊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이후 4년 동안 여러 혼란과 갈등들이 발생했다.

해군기지, 영리병원 등 정책현안을 둘러싼 갈등들도 있었고,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하고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발생한 여러 혼란들도 있었다.

선거로 인한 지역사회 내부의 갈등과 상처도 존재할 것이다.
이런 혼란과 갈등, 상처들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technic)이 아니라 철학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여러 문제들의 근원에는 ‘철학의 부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주에서 여러 정책들이 추진되어 온 과정을 되짚어 보자.

제주도청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로 얘기한 것은 경제적 효과였다. 그러나 어떤 사업을 추진해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에 연구용역을 줘서 정책을 합리화하기 바빴다.
 

또한 그동안 제주도정은 특별자치에 대해 깊이있는 토론을 하기 보다는 중앙정부로부터 몇가지 특례를 따내서 소위 ‘선도효과’를 누려보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면서 영리병원, 카지노 등과 관련해서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였다.

중앙정부와의 협상도 이런 특례따오기에 집중되었다.

중앙정부 눈치를 많이 보다 보니까, 해군기지와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정작 제주 내부에서는 소통이 잘 안 되다보니 갈등은 커졌다.

행정부터 도민들까지 중앙정부로부터 특례를 따와야만 지역발전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특별자치를 한다고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더 중앙의존적으로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면서, 제주의 장점을 살릴 수 있고 제주의 현실에 들어맞는 지역발전전략에 관한 논의는 오히려 실종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지역의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개인이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도 주위에 조언을 구하면, ‘너의 장점을 살릴 수 있고 너에게 맞는 일을 하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에 필요한 발전전략은 그 지역의 장점을 살리고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발전전략이다. 그런데 그동안 제주의 발전전략으로 논의된 것들을 보면, 제주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해도 되는 발전전략들이 많았다.
 

개성이 없는 사람은 매력이 없듯이 정체성이 없는 지역은 매력이 없다.

매력이 없는 지역은 사람을 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낮다. 자존감이 낮은 지역에서는 자치도 안 되고, 자치가 안 되면 부패와 무능만 남는다.
따라서 지역에서도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정체성은 이것저것 남의 것을 갖다 붙여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많은 고민과 경험이 필요하듯이,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기 위해서도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지금 제주에 필요한 것은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과 토론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뽑힌 제주의 대표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제주다움을 살릴 수 있는 지역발전전략에 관한 고민과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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