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제주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학기술부와 16개 시·도교육청은 7월 13일과 14일 이틀간 실시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참여 여부를 두고 입장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교과부와 대부분의 교육청은 학업성취도평가에 참여하지 않고 체험학습에 나선 학생들을 무단결석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에, 몇몇 교육청은 이들의 선택권을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몇 해 전부터 교원단체와 교육부간 논란이 되어온 쟁점이었으나, 이제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재직하는 교육청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 새로운 양상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학업성취도평가 참여 여부의 적법성을 따지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평가 참여여부가 학생들의 ‘학습활동’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학습할 권리

정치인은 자신의 삶에서 정치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경제인은 경제적 가치를, 문화인은 문화적 가치를 삶의 중심으로 삼는다. 종교인 혹은 신앙인은 자신의 삶에서 종교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간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교육자나 학습자로 인식하는 사람이려면 자신의 삶 속에서 교육 혹은 학습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게 당연하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가 경제, 문화, 종교 및 교육 등을 지배함으로써 경제, 문화, 종교 및 교육의 자율성을 억압하던 시절이 있었다. 또 종교나 경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함으로써 종교적 혹은 경제적 가치가 여타의 가치에 우선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 곧 정치활동은 물론 경제활동, 문화활동, 종교활동 및 교육과 학습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했다.

그러나 종교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과 노동운동 등을 거치며 우리는 종교적 권리, 정치적 권리, 경제적 권리 등을 확보해 왔고, 최근 다문화사회 및 다문화주의의 등장과 함께 문화적 권리도 일정 부분 신장돼 가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권리, 종교적 권리와 문화적 권리의 신장이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확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가난한 아이들의 노동시간을 법으로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해 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으며, 남자 아이만이 아니라 여자 아이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했으며, 외딴 섬이나 농산어촌 벽지에도 학교를 세워 학교의 양적 확대를 가져 왔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상교육, 무료급식을 제공하면서 교육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었다. 가정형편이나 본인의 능력 부족 때문에 이른바 기초학력이 미달 학생들에겐 별도의 보상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교공부에 뒤처지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겐 어머니 나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박제된 학습 박탈당한 선택권

그러나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의 확대 자체만으로는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장하지 못한다. ‘학습의 생활화’에도 이르지 못한다.

한 나라의 국민이 교육의 평등 사상에 입각하여 학교나 학교 밖의 교육기관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또 학교나 학교 밖 교육기관에서 아무리 공부를 잘했다 하더라도, 학습자로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또는 무엇을 배우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없었다면, 이는 학습자의 학습활동을 통제한 ‘교육사회'’지언정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장한 ‘학습사회’라 말할 수 없다. 제도화된 형태의 학습만 존재할 뿐, 교육제도 밖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학습의 생활화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는 평가 결과의 분석을 통해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신장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학습자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습의 생활화를 실현하는 데는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