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당신의 오늘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늘도 도서관에 앉아 취업준비에 한창이신가요. 매상은 줄고 종업원 임금 내칠 걱정에 연신 담배만 피워대는 사장님은 안 계신가요.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일을 고민하고 어떤 일이 힘이 되고 있는지요. 당신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주도민일보>가 도민들의 직장을 찾아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내보이는 가운데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희망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세 자매가 모두 주인" 음식점 경영 윤길선씨
▲ “세 자매가 모두 주인” 음식점 경영 윤길선씨

노형동 골목어귀의 한 음식점.

그리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이곳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는 비슷한 얼굴의 여사장님들이 홀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카운터로 주문 신호를 주고받으면 12가지 반찬이 머리 위를 휙휙 지나며 신나는 식사시간이 시작된다.
 

윤길선씨(47·도평동)는 지난해 10월 큰언니 헬렌씨(56)와 둘째언니 정옥씨(53)와 함께 음식점을 열었다.

호프집, 옷가게 등을 운영한 경험이 있던 윤씨는 세자매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음식점을 열기로 했다. “큰 언니는 음식을 잘 만들고 둘째언니와 저는 인심이 좋으니까 함께 음식점을 열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입소문의 비결은 푸짐한 음식과 여사장님들의 통 큰 인심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정식’. 반찬 가짓수만 12가지에 간장게장과 같은 듬직한 서비스가 심심치 않게 오른다.

가지, 취나물, 연근, 우엉 등 몸에 좋은 마른 반찬에서 생선구이, 제육볶음, 오징어무침, 계란말이, 호박전 등 말 그대로 가정식 같은 반찬까지 한상 푸짐하게 차려지는 데다 큰 누님같은 젊은 여사장님들이 활기찬 서비스가 있으니 이를 누가 마다할까.

한 끼 식사 값은 고작 6000원이지만 일하는 기쁨은 두 배다. “사실 남는 게 없어요. 많이 팔아도 본전이죠. 그래도 다른 식당하고 같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푸짐하게 대접하는 게 좋으니까 괜찮아요”
 

윤씨는 손님들이 음식을 남길때가 제일 속상하다고 한다. “일부러 조미료도 넣지 않고 진짜 정성을 다 해 만드는데 음식이 남으면 속상해요. 하지만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갑니다’라고 말할 때면 고단함, 속상함이 훌훌 날아가요.”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윤씨의 얼굴에는 싱글벙글 미소가 그치질 않는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음식을 만들어야 음식 맛이 좋다고 생각하는 윤씨. 손도 많이 가고 그만큼 몸도 고단할 법 하지만 그는 “저 굉장히 튼튼해요”라며 오늘도 함박웃음을 입가 가득 지어 보인다.

 

▲ “엔진수리는 자동차 정비의 꽃” 정비공 박병수씨

자동차정비공 박병수씨(40·노형동)의 하루는 오전 8시30분 작업장에 있는 차량을 둘러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장의 원인이 뭘까’ 리프트로 들어 올려진 차량을 꼼꼼히 훑어보며 박씨는 생각에 잠긴다.
 

박씨가 일하고 있는 공업사에는 현재 15명의 정비공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정비업은 대개 사고 차량의 차체를 바로 펴는 판금부와, 차체에 도료를 칠하는 도장부, 내부 기능을 수리하는 하체부, 검사부 등으로 나뉘는데 박씨는 그중 엔진부분을 맡고 있다.  

엔진은 차의 핵심이다. 엔진을 고쳐 멈춰선 차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박씨에겐 다름 아닌 생명을 불어넣는 일, 20년 근속의 보람이 여기에 있다. “자동차의 꽃을 엔진이라고 하거든요. 일단 움직여야 차니까. 원인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래 일을 해오다 보니 노하우도 쌓이고 그만큼 재미가 있죠” 

올해 마흔의 나이에 접어든 박씨가 처음 이 일을 배운 건 스무살 무렵이다.

지금은 2급 정비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그지만 처음부터 정식으로 학교나 학원을 통해 발을 담근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뜯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하던 성격이 일의 적성과 맞았고 천직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일을 배우다 보니 어느 새 마흔줄에 접어 들었다.  

박씨는 가끔 옛날 생각이 그립다. 공업사가 활성화되던 때에는 함께 일하는 정비공들이 많아 일이 지금보다 더 즐거웠다. 좁은 공간이지만 서로 등 닿아가며 일 하는 맛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막상 일을 해보면 정비공이라는 게 월급이나 휴일 등 복지 면에서도 어느 정도 할만은 한데, 요즘은 다들 옷에 기름 묻는 일을 피하려 하니까 걱정이에요. 드문드문 정비 배우는 아이들 있어도 대개 대기업이 직영하는 서비스센터 쪽으로만 가려고 하고요”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박씨는 일할 때 혼자 노래를 부르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집에서는 박씨가 리모콘 볼륨을 올리면 아내가 낮추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서 일하다 보니 가는귀가 먹었다. 직업병이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이 일이 무척 소중하다. “무엇을 하든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죠. 어떤 일이든 적응이 되면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요” 

오늘도 박씨의 작업장에는 앞범퍼가 푹 꺼진 봉고차 한 대가 올려져 있다.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박씨는 새로 만난 아픈 차들을 껴안고 오늘도 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 "친환경 세제 개발" 세탁소 주인 윤순오씨
▲ “친환경 세제 개발” 세탁소 주인 윤종오씨

우연히 길을 걷다 세탁소에 눈이 갔다. 문 앞에 내걸린 '사랑의 빨래방' 간판이 궁금해서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셔츠를 열심히 다리던 윤순오씨(45·연동)가 잠시 손을 멈췄다.

윤씨는 갑작스런 방문에도 기분좋게 “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세탁을 해주는 가게란 표시에요” 라고 답했다. 좋은 일 하신다고 말을 건넸더니 “세탁소에서 매일 하는 게 세탁인 데 뭐 어렵겠어요. 그마저도 요새 경기가 좋아선가 일이 별로 없어요”라고 했다. 

윤씨는 세탁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먹고 사는 게 힘들어 17살 때 시작한 세탁일이 벌써 20년째다.

매일 화학약품을 다루다보니 성한 데가 없어도 계속 세탁일을 할 거라고 했다. “세탁하는 사람들치고 코나 피부가 성한 사람이 없어요. 저도 아토피에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 갔더니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나을 수 없다대요. 왜 그만둬요. 내 일인데.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지”
그래서 윤씨는 요즘 친환경 세제 개발에 푹 빠졌다. 틈틈이 산에 가서 몸에 좋은 약초를 캐고 세제를 개발해 합성세제 대신 친환경 세제로 세탁을 하고 있다.

세탁소 한 편에는 그가 연구하고 개발한 세제가 가득했다. 고객들에게 직접 만든 친환경 세제를 나눠주기도 하고 일요일이면 같이 만들기도 한다고. 가게 이름이 ‘하나로 친환경 맞춤형 세탁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는 고객들의 미소 하나만으로 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고객들이 제가 세탁한 옷을 가져가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 그걸로 됐다 싶어요” 

그는 세탁소는 병원이라고 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얼룩지고 헤진 옷을 더 이상 더럽지 않게,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세탁소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 연구하느라 돈도 많이 쓰실 텐데, 벌이는 괜찮으세요?”라로 묻자 윤씨는 ‘일급 비밀’이라면 웃어넘긴다. 하루에 옷이 열 벌 들어오면 그날 매출이 열 벌 값이면 좋겠지만, 세탁소에 들어온 옷이 제 주인에게 돌아갈 때만 돈이 윤씨에게로 온다는 말로만 그의 하루 벌이를 짐작할 뿐이었다. 

윤순오씨의 바람은 하나다. “친환경 세제를 이용한 세탁 방법을 계속 개발해서 체인점도 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제를 이용해 깨끗한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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