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미래성장동력을 찾아라

독일·영국처럼 제주 역사·문화·삶과 직결하고

맥주·제주 동반 발전 위해 사연·공간·사람 갖춰야

<1>물산업-맥주산업 <16> 에필로그
제주에서 맥주를 만드는 목적은 무엇일까. 산업화를 통한 경제활성화? 맥주산업의 진원지인 유럽 국가의 역사를 반추하면 맥주는 하나의 ‘역사·문화’이자 ‘삶’이었다. 문화로 발원한 맥주는 점차 유럽 각 지역 주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고, 그 삶은 맥주산업의 토대를 다지는 결정적인 요소가 됐다. 제주맥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꿈꾸려면 결국 제주인들의 역사와 삶,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제주맥주의 시작은 ‘공공재’인 제주 지하수로부터 출발한다. 제주의 물은 곧 제주의 역사와 직결된다. 이렇듯 맥주를 형성하는 많은 재료가 저마다 역사와 문화, 삶을 담고 있다. 맥주와 제주의 역사·문화 등이 상생할 때 그야말로 제주맥주는 산업으로서도 획기적인 발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 우근민 지사가 제주맥주 개발사업 현장인 남원읍 한남리 감귤가공 공장을 방문해 시험용으로 생산된 제주맥주를 마시고 있다.         제주도민일보DB
‘명주’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조건
맥주를 포함한 제주의 술과 문화·삶이 얽힌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서 술 평론가이자, ‘막걸리, 넌 누구냐?’의 저자 허시명씨는 지난해 <경향신문>에서 ‘우리술 이야기’를 연재, 제주의 술을 소개했다.
연재글 중 제주의 술을 소재로 한 ‘제주 올레길의 술’이란 제목의 글이 눈길을 잡아끈다.

허시명씨는 글에서 먼저 제주의 전통음료 ‘쉰다리’를 소개했다.
허시명씨는 “쉰다리는 쉰밥에 보리누룩을 섞어 발효시키는 제주의 토속 발효음료다. 쉰다리야말로 올레길에 아주 어울리는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쉰다리 한 잔에 지친 다리를 쉬자!’는 문구를 내걸어도 좋을 테니 말이다”라고 말한다.

이어 허시명씨는 “제주는 술이 센 동네다”라고 운을 뗐다. 허씨는 “물이 좋으니, 술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주는 술을 관광자원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외래의 술에 압도돼 자신들의 술을 내세울 줄 모른다”고 아쉬워한다.

“쉰다리처럼 올레길과 연계시킬 술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술은 오메기술로, 제주 술의 바탕이 된다. 제주 소주인 고소리나, 제주의 마테우리들이 마셨다는 강술이나, 제주 사람들이 보양음료로 마시는 오합주도 모두 오메기술에서 시작된다. 오메기술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는 좁쌀 오메기떡을 익힌 뒤에, 중국식 호떡 크기만한 보리누룩을 섞어 빚는다”. 허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쉰다리’의 기원도 소개한다. 허씨는 “쉰다리는 제주를 대표하는 여름 술이다. 밥이 잘 쉬는 여름철에 쉰밥을 버리기가 아까워 보리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켰다. 밥이 많이 쉬면 물에 헹구고 나서 빚기도 했다. 곡식을 아끼기 위한 제주인의 지혜가 쉰다리를 낳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허씨는 “모슬포 장에서 만난 누룩 파는 삼촌(제주에서는 나이든 이웃 어른들을 남녀 가리지 않고 삼촌이라고 부른다)에게선 쉰다리 빚는 법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에는 쉰밥으로 빚지 않는데, 여름에 잘 쉬는 보리밥에 밥물하듯이 물을 붓고 제주 누룩을 밥의 절반 정도 넣어 빚는다고 했다”며 “때로 알뜰한 사람들은 물 부은 밥에 누룩이 풀어지지 않을 만큼만 담아놓았다가 술을 빚는다고 했다. 이때 건져낸 누룩은 말렸다가 다시 사용한다는 것이다”라고 쉰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강술’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허씨는 “제주 올레길에 걸맞은 술로 강술이 있다. 물론 나는 강술의 명성만을 듣고 있을 뿐이다. 강술은 물을 타서 마시는 야외 휴대용 술이다”며 “강술은 차좁쌀과 보리누룩으로 빚는 오메기술과 흡사한데, 물을 거의 넣지 않고 빚어 발효가 끝나더라도 죽처럼 되직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단맛이 돈다”고 말했다.

이어 허씨는 “강술은 목장이나 먼 길 갈 때 휴대하던 술이라고 한다. 강술은 되직하기 때문에 제주 민가에서 흔히 심는 넓은 양하잎에 싸서 가져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깅이술’도 소개하는데, ‘깅이’는 게를 지칭하는 제주어다. 허씨는 깅이술에 대해 “게를 넣어서 빚는 희한한 술이다”라고 소개한다.

허씨는 “게를 한 되쯤 잡아 찬물에 담가 해감을 한 뒤에, 소주에 넣어 1주일쯤 지난 뒤 마신다”며 “이때 제주의 전통소주인 고소리술을 사용한다. 게를 너무 많이 넣거나 도수 낮은 술을 쓰면 썩어 술을 망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허씨는 ‘명주’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늘어놓는다.
허씨는 “명주가 되기 위해서는 술맛만 좋아서는 안 된다. 그 술에 얽힌 사연이 있어야 하고, 그 사연을 증거할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 술과 공간에 감동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요즘 얘기하는 관광 스토리텔링의 3요소, 즉 사연(스토리)·공간(관광지)·사람(관광객)이 갖춰져야 진정한 명주가 될 수 있다. 이 땅에 그런 술이 몇 가지나 될까?”라고 물음표를 그린다.
제주맥주에 대한 인기를 높여 세계 속의 술로 자리매김하기 이전에 제주맥주를 둘러싼 사연과 공간·사람을 우선 신경쓰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문화도 마시게 하자
제주맥주를 둘러싼 제주의 역사·문화,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제주맥주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맥주를 대하는 제주도민들의 정서와도 직접적 관련이 있다.

이와관련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원옥 의원(민주당)은 “제주 맥주가 제주항공 꼴은 나지 말아야 한다”며 이른바 ‘제주맥주’라는 죽을 쒀서 다른 대기업에 넘겨주는 상황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소 의원은 “아이템은 좋다. 현실적으로 대기업을 끌어들여야 하고, 일단 참여한 이상 그들이 돈을 벌게도 해줘야 한다”며 “하지만 제주항공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맥주 출자법인 설립 타당성 조사를 벌인 ㈜도시경영연구원도 대기업과 협약시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인 운영에 있어 공공출자자로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하고 △무분별한 증자·주식매매 방지 장치를 둬야 하며 △지역주민 지원·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건을 달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의 합의’라는 전제조건이 따라야 한다. 제도만으로 제주맥주를 ‘제주의 것’으로 인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주도민이 정서적으로 제주맥주를 친화적으로 느껴야 하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이는 제주맥주가 제주의 역사·문화, 제주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방법 밖에 없다. 제주맥주와 제주의 문화·삶이 동반 발전해야 한다. 제주의 전통술, ‘고소리 술’이 한국을 대표하는 제주의 무형문화로 자리한 것은 고소리 술에 내재한 무궁무진한 제주의 역사와 문화, 삶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세계인 누구나 제주맥주를 기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미지는 제주의 고유 문화에서 비롯될 것이다. 세계인들이 제주맥주를 마실 때 제주의 역사·문화·삶도 마시게 하자. 우리가 호프를 마시며 독일·영국을 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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