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활사 이삭줍기 〈59>원목(垣牧)과 유목(遊牧)

▲ 송악산의 분화구(1999. 9. 26). 송악산의 분화구를 ‘암메창’이라고 한다. 바다에는 ‘형제섬’이 보인다. 상모리와 하모리 사람들이 공동으로 마련했던 방목지에 이제는 한 마리의 농우도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청명(淸明, 4월5일경)에는 하루에 말(馬)은 한 말(斗), 소(牛)는 닷 되의 풀을 뜯는다” 청명 무렵에 산과 들의 초목은 미처 자라지 못한다. 이빨이 위턱과 아래턱 양쪽에 있는 말은 하루에 한 말, 이빨이 아래턱에만 있는 소는 닷 되의 풀을 뜯는다는 것이다. 입하(立夏, 5월5일경)에는 소도 하루에 한 말을 먹을 수 있을 만큼 풀이 자란다.

제주도 사람들은 청명, 또는 입하에서 대설(大雪, 12월8일경)까지 소를 산과 들에 풀어놓고 기른다. 말은 추위에 강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산에서 방목하지만, 추위에 약한 소는 대설부터 이듬해 청명, 또는 입하까지는 ‘쇠막(외양간)’에 매어 기른다. 소의 방목을 시작하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청명에서부터 입하 사이다.

청명과 입하 무렵부터 대설까지 농우 기르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돌담을 에두른 방목지 안에 풀어놓고 기르기다. 그 동안 농우를 부릴 일이 있을 때는 방목지에서 끌고 온다. 농우의 노력 사용이 끝나면 다시 방목지에 풀어놓는다. 이러한 농우 기르기를 ‘원목(垣牧)’이라고 하고자 한다. 둘은 계절에 따라 방목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청명 또는 입하부터 대서(大暑, 7월23일경)까지를 ‘봄쇠’, 대서부터 추분(秋分, 9월23일)까지를 ‘여름쇠’, 그리고 추분부터 대설까지를 ‘가을쇠’라고 한다. 이러한 농우 기르기를 ‘유목(遊牧)’이라고 하고자 한다. 제주도의 유목은, 계절에 따라 주거지와 방목지를 옮겨 다니는 유목민들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제주도식의 유목이다.

 

초목 새싹 일찍나와 방목할만

원목과 유목의 몇 사례를 제시한다.

①대정읍 상모리 임창수씨(1927년생·남)

이 마을은 수소 농우가 90% 안팎으로 절대 우세하다. 이 마을 해변에는 송악산(표고 104m)이 있다. 송악산의 분화구(깊이 69m)는 깊숙하다. 이곳을 ‘암메창’이라고 한다. 상모리와 하모리 사람들은 송악산과 그 주변에 공동으로 방목지를 마련한다. 암메창도 방목지로 활용한다. 송악산 방목지는 해발 0∼104m 사이에 걸쳐 있다. 방목지의 넓이는 70정보(1정보는 3000평)다. 청명에서 대설까지 수소 농우를 이곳에서 기른다. 우주(牛主)들은 하루에 세 사람씩 교대하며 농우들을 돌본다. 목장 안에 1천평 정도의 밭에 돌담으로 단단하게 울타리를 두른다. 그리고 ‘살체기문(사립문)’을 단다. 밤에는 모든 수소 농우를 이곳에 가둔다. 수소 농우는 암소 농우보다 밤에 월장하려는 욕구와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수소 농우 전용의 방목장에는 이런 시설을 갖추는 경우가 많다.

 

②대정읍 구억리 박근호씨(1930년생·남)

이 마을은 암소 농우가 90% 안팎으로 절대 우세하다. 이 마을 북쪽 일대는 상록수림의 지대다. 이곳을 ‘구석밭곶’이라고 한다. 구석밭곶은 해발 190∼120m 사이에 걸쳐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방목지를 마련한다. 방목지의 넓이는 80정보다. 해마다 봄에 방목지에 방화(放火)를 하고, 방목지의 울타리를 보수한다. 한 사람의 관리인을 선정한다. 이 사람을 ‘곶쟁이’라고 한다. 청명에서부터 대설까지 이곳에 농우를 풀어놓는다. 곶쟁이는 하루에 한 차례 겹담을 돌아본다. 겹담을 뛰쳐나간 농우는 반드시 찾아내어 방목지 안으로 넣어놔야 한다.

 

③구좌읍 세화리 지형종씨(1926년생·남)

이 마을은 암소 농우가 90% 안팎으로 절대 우세하다. 이웃끼리 20마리 정도의 농우를 모아 서로 번갈아가면서 기른다. 이를 ‘모듬쇠’라고 하고 모듬쇠를 기르는 조직을 ‘모듬접’이라고 한다. 송아지는 두수(頭數)에 넣지 않는다. 한 사람(당번)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모듬쇠를 돌본다. 한 가호(家戶)에서 모듬쇠에 두 마리의 농우를 넣을 수도 있다. 그 가호에서는 그만큼 당번의 횟수를 늘린다. 모듬접에서는 밤에 모듬쇠를 가둬두는 밭을 마련한다. ‘바령밭’이라고 한다. 당번은 모듬쇠를 들로 몰고나가 풀과 물을 먹이고, 해가 질 무렵에 바령밭에 넣어 가둔다.

 

가호마다 순번 정해 모듬쇠 돌봐

④안덕면 상창리 오기찬씨(1935년생·남)

이 마을은 암소 농우가 70% 정도로 우세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공동으로 병악(표고 492.3m)과 그 주변에 공동으로 방목지를 마련한다. 방목지는 해발 330∼492.3m 사이에 걸쳐 있다. 방목지의 넓이는 100정보다. 농우 한 마리의 방목은 1정보 정도가 적당하다. 이 마을의 농우는 계절에 따라 방목의 방법과 방목지를 달리한다. 청명부터 대서까지는 ‘서톨’이라는 마을 주변의 상록수림 지대와 휴경지에서 개별적으로 방목한다. 그리고 대서에서 대설까지는 ‘병악’ 방목지에서 공동으로 방목한다. 병악 방목지에 방화를 하고 울타리를 보수한다. 두 사람의 ‘목감(牧監)’을 선임한다. 두 사람의 목감은 병악 방목지의 암소 농우를 돌본다. 그 값으로 암소 농우 한 마리당 겉보리 4되를 받는다.

 

①의 상모리(대정읍)와 ②의 구억리(대정읍) 사람들은 농우를 원목(垣牧)한다. 왜 그럴까. 상모리 송악산 방목지와 구억리 구석밭곶 방목지는 해발이 낮은 곳(해발 0∼120m)에 위치하기에 청명부터 방목이 가능할 만큼 초목의 새싹이 일찍 나온다. 그리고 이들 마을에서 농우를 풀어놓을만한 곳은 이곳 뿐이다. 그러니 농우를 일정한 방목지에서 원목할 수밖에 없다.

③의 세화리(구좌읍)와 ④의 상창리(안덕면) 사람들은 농우를 유목(遊牧)한다. 세화리에는 농우 방목이 가능한 곳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상창리 사람들은 해발 330∼492m에 걸쳐 있는 곳에 병악 방목지를 마련한다. 병악 방목지는 해발이 높은 곳이다. 청명과 입하 무렵에도 초목이 많이 자라나지 못한다. 소서(小暑, 7월7일경) 무렵이 돼야 초목이 무성해진다. 이때는 여름농사가 한창 이루어질 때다. 농우를 풀어줄 겨를이 없다. 이 마을 사람들은 청명에서 대서까지는 농우를 개별적으로 기를 수밖에 없다. 대서부터 대설까지는 병악 방목지에 농우를 풀어놓고 기른다.

제주도 사람들은 그들이 처한 방목지의 조건에 따라 농우를 원목 또는 유목의 수단으로 길렀다.<고광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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