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멕시코의 하늘 아래 선수로 만났던 허정무 감독(55)와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51)이 24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남아공에서 지도자로 다시 만났다.

허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은 17일 오후 8시30분(이하 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아르헨티나의 2010남아공월드컵 본선 B조 2차전을 통해 재회한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맞대결은 지난해 12월 월드컵 조추첨 당시부터 관심을 끌었다. 다름 아닌 허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의 존재 탓이다.

두 지도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선수로서 1986년 6월2일 멕시코시티의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1986멕시코월드컵 A조 1차전에서 만났다.

허 감독은 이 경기에서 0-2로 뒤지고 있던 후반전부터 마라도나의 마크맨으로 나섰다. 수비수들이 마라도나의 현란한 발재간을 막아내지 못하자 김정남 감독이 마크를 지시한 것이었다.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었지만 때에 따라 공격수, 수비수로 변신했던 허 감독은 이후 마라도나의 그림자가 됐다.

이날 아르헨티나는 후반전 1골을 더 보태 한국을 3-1로 꺾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후반전 내내 그라운드에 뒹굴며 혹독한 본선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허 감독의 오른발이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걷어차는 장면은 외신에 대서특필됐고, '태권축구'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허 감독은 악착 같은 근성으로 얻은 '진돗개'라는 자신의 별명을 각인시키게 됐다.

강산이 두 차례나 변한 24년 뒤, 두 사람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겨 다시 맞대결에 나서게 됐다.

허 감독은 지도자로 변신한 뒤 몇 차례 우려굴곡을 겪었지만,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을 통해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현역은퇴 후 약물중독으로 한때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마라도나 감독은 2008년 아르헨티나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고전했지만, 선수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 맞대결도 24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보다는 아르헨티나의 우위가 점쳐지고 있다.

한국은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하며 본선을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리오넬 메시(23. 바르셀로나), 곤잘로 이과인(24. 레알 마드리드), 카를로스 테베스(26. 맨체스터시티), 세르히오 아게로(2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세계 최강의 공격진이 버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고전이 예상되고 있다.

허 감독은 아르헨티나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아래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전 승리를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소한 승점 1점을 얻어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서겠다는 복안이다.

나이지리아전에서 고전한 끝에 1-0 승리를 거둔 마라도나 감독은 한국전을 통해 남아공월드컵 우승후보다운 전력을 과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몸을 부대끼며 기량을 겨뤘던 허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은 이제 제자들을 앞세워 대리전을 치른다. 운명과 같이 되돌아 온 맞대결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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