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우리 헌법은 시민권 보장을 비교적 잘 담고 있다. 신체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각종 자유권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참정권, 광의의 복지를 의미하는 사회권이 우리 헌법의 각 조항마다 잘 규정되어 있다.

이대로만 된다면 유럽 복지국가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헌법 정신과 규정을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로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건강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의료보장 수준은 턱없이 낮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시민권 획득 투쟁의 역사를 통해 자유권과 참정권에 이어 사회권의 확보를 단계적으로 이루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들은 사회권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정치과정에 돌입하였는데, 이를 통해 탄생한 국가모델이 복지국가다.
 

선거권으로 복지국가 이뤄내야


경영계 등의 총자본과 지배적 엘리트 등의 보수정치 세력은 복지국가의 제도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럽 선진국들에서 거의 예외 없이 복지의 대대적 확충과 복지국가의 제도화가 추진되었던 것은 노동자와 서민의 강력한 지지, 심지어는 상당수 중산층의 지지까지 등에 업은 강력한 정당, 즉 복지국가 정치세력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유럽 복지국가의 정치과정을 주도하였던 그런 강력한 진보적 대중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6·2지방선거 과정을 통해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의제가 정치사회적 수용성을 보였고, 대부분의 야당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는 것이다.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한 압도적 지지와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6·2지방선거에서 주요 정당들이 이것을 선거공약의 전면에 내세웠던 것이다.

국민이 원하기만 하면, 시민사회의 소통을 통해 의사를 결집해내기만 하면, 보편적 복지 의제는 얼마든지 정치사회적 요구로 정식화될 수 있고, 우리나라 정치세력의 재편과 성격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복지국가 정치세력은 더욱 강화된다. 시민사회와 정치세력 간의 이러한 선순환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깨어있는 시민”의 중요성은 아무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하나의 보편적 복지 의제


무상급식에 이은 보편적 복지 의제 하나가 최근 시민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7월 17일 출범하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그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으나 보장성이 유럽 선진국의 2/3 수준에 그쳐 우리네 가계의 의료비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 내고 있는 건강보험료의 34%(국민 1인당 1만1천원)를 더 내면, 병원의료비의 90% 이상을 보장하고, 1인당 연간 총 진료비가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실상의 병원 무상의료를 달성할 수 있다. 즉, 직장가입자가 건강보험료 1만1000원을 더 내면, 법적으로 사용자도 1만1000원을 더 내야하고, 이 둘을 합한 금액의 20%인 4400원을 정부가 국고지원을 통해 더 내야한다.

직장근로자는 1만1000원을 더 내는 것이지만,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2만6400원이 더 늘어난다. 이 돈은 국민 모두가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며, 사회연대의 강화와 함께 우리네 가계의 의료비 불안은 완전히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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