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의 문화살롱

어느 카페에 들렀더니 가게 한켠에 예전에 사용하던 팥빙수 기계가 놓여 있었다. 얼음 덩어리를 가운데 놓고 손잡이를 돌리면 얼음이 갈리면서 눈가루로 내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다양한 크기의 빙수기가 있어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빙수기가 있는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설사 빙수기가 있는 가게를 찾는다 해도 용돈이 부족해 사먹지 못하고, 오래도록 앉아 팥빙수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수북한 얼음산 위에 고운 미숫가루와 단팥을 한 수저씩 듬뿍 올리고 우유를 뿌려 내는 팥빙수는 한 입만 먹어도 금세 더위가 멀리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날이 무더워진 요즘, 시내에 있는 카페를 들어가면 커피 내리는 소리보다 얼음 가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그동안 팥빙수도 많이 진화해 이제는 팥과 연유, 우유뿐이던 예전의 모습에서 녹차, 과일, 아이스크림, 요거트, 인절미, 커피, 젤리 등 오색의 다양한 고명이 얼음 위에 올려진다.

마치 푸짐한 양푼비빔밥을 연상시키는 맛과 양에 제주 팥빙수는 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굳이 카페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도 택배로 팥빙수를 배달해 먹을 수 있으니 참으로 편리해졌다.

그런데, 그런 인기 탓일까? 해마다 조금씩 오르던 팥빙수 가격이 드디어 올해 15000원 고지를 훌쩍 넘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500원 정도에서 시작했으니 그 사이 가격이 30배 이상 오른 것이다. 보통 성인 세 명 정도의 점심식사와 맞먹는 가격이다. 물론 빙수에 들어가는 팥, 과일, 떡을 비롯한 모든 재료의 가격이 인상됐고, 어른 4명이 다 못 먹고 남길 만큼 푸짐한 양을 생각하면 많이 비싸다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맛보다는 추억으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소박하지만 더위에 시달린 입맛을 단숨에 되살려 주던 얼음과 팥뿐인 옛날 팥빙수가 요즘 들어 많이 그리워진다. 화려함으로 치장해 꼭 남기게 되는 고급 팥빙수보다 내가 부담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적당한 양의 소박한 옛날 팥빙수. 길가에 ‘옛날팥빙수 판매’라고 적힌 문구가 하나씩 붙는 걸 보면 아마 나와 같은 그리움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가나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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