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 오석준

잔칫날이었습니다. 지난해 6월 15일 태어난 <제주도민일보>가 첫 돌을 맞던 날이지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창간특집호 2면 도지사의 창간 축하 글과 1면 하단 광고 지면을 백지로 편집했습니다.

해당 지면에 설명드린 그대로, 제주특별자치도가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를 주관하는 뉴세븐원더스(N7W)재단의 상업적 행태 등에 대한 본보의 비판적인 보도를 이유로 이미 협의됐던 도지사 축하 글과 광고 게재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기사와 광고로 대체할수도 있었지만, 굳이 백지편집을 한 것은 비판적인 보도를 ‘돈’으로 막아보겠다는 제주도정의 시대착오적이고 몰상식한 언론관을 도민·독자들께 알리고 판단을 구하고자 함입니다.

15일자 창간특집호 편집이 거의 마무리된 13일 저녁 갑작스럽게, 그것도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이유로 도지사 축하 글과 광고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당당하게 알려온 제주도의 ‘용기’가 하도 가상해서 말입니다.

24년차 기자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당혹스러웠지만, 광고비 몇푼으로 도정에 대한 비판을 무기로 잠재우고 지역신문을 길들여보겠다는 발상에 더 놀라움이 컷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도민들의 알 권리라는 기본적인 상식에 정면도전하는, 천박하고 저급한 인식에 대한 분노를 넘어 연민마저 느껴졌습니다.

<제주도민일보>가 7대자연경관 선정 투표 경쟁을 문제삼는 이유는, 공신력이 의심스러운 개인재단의 상업적인 이벤트를 국가적인 아젠다로 삼아 공무원과 기관·단체를 동원하고 예산을 퍼부어가며 ‘올 인’하는 몰가치적 행태입니다.

당초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원회 등이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이벤트를 주관하는 뉴세븐원더스(N7W)재단이 7대자연경관 선정과 관련해 유엔과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 않음은 설립자인 버나드 웨버의 ‘제주 투어’때 본인의 입을 통해 확인된바 있지요. 또한 재단은 버나드 웨버가 설립한 영리 자회사 뉴오픈 월드코퍼레이션(NOWC)이 벌어들이는 전화투표 수익금과 방송수익금 등으로 운영되는 사실상의 영리재단임도 드러났습니다.

재단 수익에 ‘효자’ 노릇을 하는 전화투표를 특정지역에 대한 무제한적인 중복투표가 가능하도록 한 비과학성과 불공정성, 261곳에서 77곳, 28곳으로 최종 후보지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불가리아 벨로그라칙을 비롯해 세르비아 악마의 동굴, 홍콩 망부석, 페루의 콜카 협곡 등 투표순위 1~4위 지역이 모두 탈락하고 하위권이었던 제주도와 미국 그랜드캐니언 등이 선정된 것도 공정성에 대한 의문과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는 대목입니다.

몰디브 정부가 스폰서십 35만달러와 월드투어행사 50만달러 등 85만달러를 내라는 ‘N7W’재단의 과도한 요구와 불투명한 투표과정 등을 이유로 투표 불참을 선언했고, 인도네시아 문화관광부도 재단이 7대 자연경관 선정식 주최 명목으로 라이센스 비용 1000만달러와 장소·행사비 3500만달러 등 4500만달러를 요구해 거절하자 후보지인 코모도섬을 탈락시키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지요.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가 주장하는, 1조원이상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제효과도 ‘N7W’재단의 자료를 인용한 것일뿐 객관적인 근거가 없고, 지난 2007년 재단이 주관한 ‘신 7대 불가사의’ 선정지역 관광객 증가 수치도 예측치이거나 사실과 다름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파괴하고 마을공동체를 무너뜨리며 들어서는 해군기지와 주민들의 피울음엔 눈을 감고 이런 이벤트에 20억원이 넘는 혈세를 들여가며 묻지마식으로 덤비는게 과연 온당한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유신·군부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법한 이번 일을 통해 ‘먹통’ 제주도정의 오만과 독선을 봅니다.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고 공공의 재원인 예산을 개인 쌈짓돈 쓰듯 주무르면서 지역신문과 도민들을 다스리겠다는, 오만불손하고 몰가치적인 ‘행실머리’를 이대로 덮어둬야 하겠는지요. 도민·독자님들께 다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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