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은 어떻습니까]카페 ‘메이비’ 대표 이혜연씨

▲ 카페 '메이비' 대표 이혜연씨. 사진촬영에 시종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씨가 기자의 설득에 겨우 허락한 사진이다.

이중섭거리를 문화공간으로 만든 ‘일등공신’
젊음 넘치는 거리 변신에 시민 호평 쏟아져


“엄마 꽃가게 옆에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게 내가 테라스 카페를 만들게. 동생아, 너는 옆에 수공예 마켓을 운영해 보는 건 어떻겠니? 멀티문화공간을 만들어 보는거야”

대학을 겨우 1년 다니고 자퇴서를 낸 이혜연(34)씨가 당시 엄마·동생과 나눈 얘기였다. 애초 대학에 생각이 없었지만 엄마의 권유로 1년을 다녔다. 입시사회에 반기를 든 혜연씨는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인생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설레임에 가슴이 터질만큼.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에게 대학 가기 싫다고 했어요. 엄마는 내가 공부 못해서 대학 못갔다는 얘기 들을까봐 일단 붙고 나서 생각하자 하셨죠. 입학 후 바로 자퇴할 생각이었지만 학교생활이 은근 재미있어 1년을 다녔어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2년 가까운 여행길에 올랐다. 그의 여행은 유럽은 물론 중동·이스라엘 등 위험한 국가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어에 소질이 있었던 탓에 여행은 혜연씨에게 수많은 친구와 값진 경험을 선물했다.

스스로 벌어 다시 여행하겠다는 마음에 고향 서귀포에 와서는 영어학원 강사를 2년간 했다.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다시 출국. 그녀의 행선지는 캐나다였다. 4년간 머물면서 뒤늦은 공부의 매력에 빠져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통역사 등의 일을 하게 됐고 그의 실력을 인정한 미국의 유명 방송사인 CNBC에서 취업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당시 CNBC는 한국 론칭 작업 중이어서 혜연씨는 방송채널을 한국 미디어업체에 판매하는 일을 도맡았다.

“미디어 관련 일은 정말 흥미롭고 보람됐어요. 하지만 조금씩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짙어지더라고요. 서울 생활이 점점 지쳐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죠. 고액연봉이었지만 과감히 접고 지난해 4월 귀향했어요”

4자매 중 셋째인 그녀의 가족 사랑은 남달랐다. 서귀포 토박이로 30년 넘게 꽃가게를 운영해 온 엄마, 자신 못지않게 외국 생활을 충분히 한 동생과 함께 오래전 나눴던 ‘멀티문화공간’ 얘기를 다시 나누게 된다.

“제가 가족들에게 ‘하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어요. 30여개국을 여행하면서 눈여겨 봤던 외국의 카페를 컨셉으로 잡고 지금의 테라스카페를 만들었죠.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엄마의 꽃가게 옆으로 정했죠”

혜연씨의 카페는 이중섭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귀포시는 이 거리를 문화공간으로 살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죽어 있는 거리’는 좀처럼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 상가들의 폐업·개업도 반복됐다.

그러나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혜연씨의 테라스 카페를 비롯해 이곳에 만들어진 다양한 카페들은 관광객들과 시민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주변 상인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올레꾼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곳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다음달이면 카페 오픈 1주년이 돼요. 이곳서 카페를 운영하고 거리의 벼룩시장을 운영해 나가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분위기는 ‘반전’됐죠.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감히 서귀포의 르네상스시대라고 평하고 싶어요”

혜연씨의 유창한 영어솜씨 덕에 카페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서귀포에서 학원·학교 강사로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혜연씨의 테라스카페 ‘메이비’를 모르면 ‘아웃사이더’로 분류되기도 한단다.

“우리 카페를 찾는 외국인의 발길이 부쩍 잦아서인지 이곳은 ‘서귀포의 이태원’이란 별칭도 얻었어요. 또 어른들은 서귀포 젊은이들이 이곳에 모인 것을 보고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혜연씨 말을 듣고 보니 이중섭 거리는 젊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나가는 외국인마다 혜연씨에게 인사를 건네고 여행객들은 카메라로 카페 정경을 담았다.

이중섭 거리 변화는 서귀포에 여행왔다가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을 정착지로 정해버린 이른바 ‘서귀포 이주민’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이들 또한 이 거리 주변에 혜연씨처럼 분위기 좋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주역들이다.

“서귀포가 점점 쇠퇴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다른 대도시를 쫓아가니 그렇죠. 서귀포만의 분위기로 ‘특화’시켜 자꾸 오고 싶은 도시로 만들면 돼요. 서귀포에는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참 많답니다. 함께 만들어볼래요”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문화공간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서귀포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는 현장을 충분히 만끽하고 오는 기분이었다. 대책없다고 포기했던 행정도 뒤늦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빌어봤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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