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 국회·도정·의회 등 통제 장치 무력
‘공사중단’ 요구 수용 불투명…진상조사단 자료요구도 무시

현재 제주에서 가장 센 ‘권력’을 가진 기관은 어디일까. 제주도정? 도의회? 언론? 경찰? 하지만 이들은 ‘해군’이 지닌 권력의 무게감에 비교할 바가 못된다는 평가다.

해군이 ‘무소불위’ 권력으로 제주사회에 사실상 안착했다. ‘해군기지 건설’에 있어서 해군은 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 도민을 비롯해 심지어 국회의원들의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양윤모 영화평론가가 16일로 옥중단식 41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단식은 이미 해군 등으로부터 외면된지 오래다.

양윤모 평론가는 단식 40일을 맞아 ‘유서’를 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군기지 건설을 철회하지 않으면 단식도 멈추지 않겠다는 ‘사생결단’ 각오를 관철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양 평론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대내외에서 자칫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야5당, 전국 시민사회단체, 진보언론 등은 양윤모 평론가의 단식과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해군기지 이슈’를 전국화하는 데 애를 쓰는 상황이다.

하지만 해군은 점차 거세지는 비판여론 및 공사중단 요구에 귀를 닫았다. 공사를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가 16일 해군본부에 ‘일시 공사중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질지 불투명하다. 제주도는 이날 야5당 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의 요구를 수용해 “진상조사기간 동안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할 것”을 요청한 공문을 해군에 공식 전달했다.

야5당 진상조사단의 조사에도 협조가 미흡한 것으로 알려졌다. 멸종위기생물인 ‘붉은발말똥게’ 서식현황 및 보존대책 등을 명시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붉은발 말똥게 보호를 위한 연구 및 대책수립’ 용역결과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야5당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해군 측에 용역결과 공개를 요청했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며 “해군이 자료공개 등에 있어서 폐쇄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민의견 수렴과정도 무시하고 있다. 최근 야5당이 준비중이던 ‘해군기지 방송토론회’에 불참한 것이 대표적 사례.

도내 야5당에 따르면 당초 TV토론회는 지난 12일 저녁 2시간 이상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일이 다가오자 해군기지 사업단이 ‘불참’을 알렸다. 제주도 또한 해군의 불참을 이유로 토론회에 함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 토론회는 취소됐다. 명확한 이유가 없는 ‘불참’이었다.

야5당은 성명을 통해 “해군기지사업단장은 TV 토론회 불참 사유를 도민들께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제주지역사회와 도민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시키는 당사자로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야5당은 “현재 제주도에서 가장 큰 현안,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야기된 사회갈등을 해결하고자 모든 도민들과 정치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노력하고 있다”며 “정작 당사자인 해군은 갈등을 해소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군에 대한 도정·의회의 견제장치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해군에 눈치보며 해군입장에 편승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제주도는 그동안 해군기지 공사강행에 따른 주민들의 신체·심리적 피해를 사실상 방관했다. 또 줄곧 제기된 ‘공사중단’ 요구를 외면하다 야5당 진상조사단이 나서자 해군 측에 ‘일시 공사중단’을 요청했다.

해군과 해군기지 건설 앞에 무게감있고 뚜렷한 도정의 철학·정책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해군이 ‘제왕적 도지사’ 권력을 뛰어넘었다”고 힐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제왕적 도지사’를 걱정했지만 이제는 해군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더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며 “해군기지가 도민 뜻을 거슬러 해군 의지대로 추진되면 앞으로 해군을 견제·통제하기가 사실상 힘들어진다. 해군의 뜻대로 도정을 비롯해 도민사회가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이정원 기자 yunia@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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