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대가족 이루며 사는 김정안씨

부모 모시며 4남매 키우는 젊은 아빠
방황의 길에서 성실한 가장으로 변신

학교 가는 아이들 준비물 챙기랴 밥 챙겨 먹이랴 아침마다 분주하다. 네 아이를 키우는 김정안씨(34) 부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일행사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 딸부터 돌이 갓 지난 막내아들까지 4남매를 키우는 젊은 아빠 정안씨. 맞벌이부부이기에 그의 아내 또한 출근길이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다.

세 아이는 각자 학교와 어린이집을 향하지만 어린 막내는 함께 사는 그의 부모 차지다. 이런 부모에게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한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여덟 식구가 산다고 얘기하면 남들이 대단하다고 해요. 근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사실보다는 얹혀사는 신세거든요”

사실 네 아이를 거뜬히 키울 수 있는 배경에는 그의 부모 역할이 크다. 정안씨는 요즘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걱정인 젊은 부부들에 비하자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주말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한다. 정안씨의 유일한 낙은 아이들과 함께 오름·한라산 등을 오르는 일이라고. 이제 정안씨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름은 거의 없을 정도다.

“산에 가자고 아침에 깨울 때는 아이들이 귀찮아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서면 좋아해요. 저 역시 자연과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휴일이 늘 기다려지고요. 주말 아이들은 무조건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지내서인지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다. 형제들이 많은 탓도 있지만 집에 사람이 많으니 아기 정서가 안정되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셋째 딸은 또래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다고 한다.

딩크(dink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족, 또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정안씨는 “그런 생활은 전혀 부럽지 않다. 그들은 아이들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산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일반적인 결혼시기와 비교하면 전 어린 나이에 결혼한 셈이죠. 뭣 모르고 일찍 한 탓에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일이 첫번째가 됐고 어떠한 결정 앞에서도 가족을 위한 길을 선택하게 되더군요”

정안씨가 일찍 결혼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한 대학생활을 내팽개칠 정도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2학년부터 시작한 전공과목이 너무 어려웠고 그보다는 친구와 어울리는 게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늘 어울려 다니며 곁을 지켰던 소중한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항상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지자 정안씨의 충격은 컸다.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술에 기대어 긴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려 간혹 마시던 술은 멀건 대낮에도 마시는 신세가 됐다. 그런 정안씨에게 필요했던 존재는 ‘술사주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친구가 정안씨에게 소개팅 제안을 했다. 정안씨는 그런 친구에게 “술사줄 수 있는 사람이냐”며 대뜸 물었다고 한다.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은 정안씨가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낸 사실을 알고 옆에서 힘이 돼주고 술 친구가 돼 주었다. 이들의 만남은 더욱 잦아졌고 정안씨도 어느새 그 여인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며 좋아하게 되는데.

어느날 정안씨에게 덜컥 아이가 생겼다. 대학생이었던 그에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녀와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책임지고 먹여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대학을 중퇴했다. 그리고는 친구의 권유로 우체국 집배원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가족이 생기니 삶이 바뀌더군요. 살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냈어요. 애들이 크려면 아직 멀어서 더 열심히 살아야죠. 아이들이 제게는 삶의 활력소이며 힘이에요”

지금은 4남매 키우느라 정신없다는 정안씨. 우스갯소리로 다섯째 아이 계획은 없냐는 질문에 “농구팀(5명) 구성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아내가 싫어할 것 같다”며 “넷째가 이제야 갓 돌 지났는데 우선 4남매 열심히 키우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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