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 교수>

▲ 조영배


포크 레인 밑에 드러눕는 사람들. 언론을 통해 종종 보아 온 광경이다. 포크 레인으로 무언인가를 부수려고 하면, 으레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포크 레인 밑으로 들어가 드러눕는다. 이런 광경을 보는 날이면, 무지한 권력을 상징하는 포크 레인이 참으로 미워진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밑에 드러눕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필자는 포크 레인 밑에 드러눕는 사람들의 처절한 심정을 온 몸으로 느낀다. ‘오죽 했으면 저럴까?’라는 단순한 안타까움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을 잘 알고 있기에 저들의 행위에 도리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요즘 강정마을의 이야기이다.

강정 중덕 바다에 가보면, 거기에는 정말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바다가 산다. 거기에는, 드넓은 바다가 좁다는 듯이 거대한 등을 불쑥 내민, ‘범섬’이라는 고래가 산다. 거기에는 수평선이 없다. 그저 하늘과 바다가 서로 한 몸이 되어 울렁거리는, 파란 빛깔만이 산다. 거기에 가면, 강과 바다와 하늘이 함께 나누는 사근사근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태고의 신의 창조를 머금은 듯한 드넓은 바위가 차라리 바다처럼 파도를 친다. 거대한 바다와 거대한 바위가 서로 만나 하늘의 창조사건을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곳이 바로 강정 중덕이다.

사람들이여, 강정 중덕에 가 보라! 그 곳에 가면 그 거룩한 힘의 울렁거림에 그저 인간의 작은 그릇이 부끄러워지리라. 수 만평은 됨직한 한 덩어리의 거대한 바위의 곳곳에서 생수가 솟아나며 숨을 쉬고 있는, 그래서 생명의 기운이 묵직하게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강정 중덕이다. 그런데, 내(川)와 바다와 땅과 생수와 하늘이 만나 신비한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수 만평이나 됨직한 그 거대한 바위를 시멘트로 발라버리겠다니… 그리고 저 짙푸른 바다의 살아 있는 물길을 막고 그 바다에 기름물길을 만들겠다니…이를 어찌 이성(理性)을 가졌다는 인간의 발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어찌 포크 레인 밑에 드러눕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를 막겠다고 포크 레인 밑에 드러눕는 사람들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제주 사람들이여, 돌을 던지려거든 강정 중덕 바다를 보고 와서 던지라. 과연 그 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러니 필자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신성한 기운이 감도는 곳에 시멘트를 쏟아 붓겠다는 것은 생명모독이며, 공존파괴이며, 거룩함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주장을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양한 주장들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어느 일방의 주장이 다른 주장을 무시하고, 지배하고, 죽이려든다면, 우리는 또한 이를 거부해야 하며, 그 짓밟으려는 힘들에 대하여 온 몸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길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또한 살아있다는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강정 사람들의 마음 밭은 마치 전쟁터와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 세력들은, 강정출신의 포크 레인 기사를 앞장세워 강정 사람들끼리 싸우도록 추악한 짓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 강정은 피울음을 울고 있다. 피울음을 흘리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의 피울음도 더욱 처절해질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 분은 항상 ‘고통 받는 사람들’ 편에 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이여, 강정 중덕에 가 보라! 그리고 그곳의 신비한 바다공기를 마셔보라! 그곳은 피울음을 울어야 할 곳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의 감동이 그득한 노랫소리가 넘쳐야 할 곳이다. 강정 중덕을 가보면 그곳이 왜 생명의 노래가 넘쳐야 할 곳인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온 몸을 던져 포크 레인 밑에 드러눕는 사람들. 그들은 그러지 못하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필자도 온 마음으로나마 그들과 함께 포크 레인 밑에 드러눕는다. 그리고 오늘도 필자의 마음은 강정 중덕 바다를 향한다. 제주 사람들이여, 강정 중덕 바다에 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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