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섭

따뜻한 남쪽 나라여서인지 우리 제주는 경칩(驚蟄)이 지나고 나면 온 세상이 푸르름을 머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개나리와 목련이 몽아리처럼 움을 틀다가 노랗고 새하얗게 피어나고, 겨우내 눈과 바람을 맞으면서 푸르렀던 유채도 꽃을 피워 봄을 알리게 됩니다.

그러면 성질 급한 벚꽃나무 길가 가로수들은 하얀 꽃눈으로 예쁜 마음을 소담스럽게 키워가는 아이들과 소녀들을 거리로 몰려나오도록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맘때면 겨우내 움추렸던 우리네들도 여기저기 오가며 가지치기로 거름주기로 분주한 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주함이 시작되려할 때 또 하나 챙겨야 할 일이 묘제(墓祭)였습니다.
기제사(忌祭祀)로 모시지 않는 조상들이 모셔져 있는 산소를 찾아보고 주변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이 남기신 뜻을 가슴에 새기면서 보다 가치 있는 후손으로 역할하기 위한 후손들이 마련한 다짐의 시간이 되기도 하였지요.

특히 새 풀이 다시 돋아나지 않는다고 하는 백로(白露) 절기가 있는 가을 추석 무렵에 하는 벌초와는 달리 ‘똥 누고 뒤돌아볼 시간도 없다’고 하는 농번기 이전에 조상의 산소를 방문하고자 했던 뜻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한식(寒食)을 전후한 일요일에 날을 잡아 보다 많은 후손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하면서 입도조(入道祖)의 묘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입도조 이후 파조(派祖)나 지역이나 혈연에 의해 모셔지고 있는 조상에 대한 묘제는 그 다음에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군위오씨의 경우 성산 대수산봉 제단에 입도조의 묘(墓)가 모셔져 있습니다. 해마다 4월 두 번째주 일요일이면 이곳에서 군위오씨 제주도종친회가 주관하는 묘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4개 파로 나누어 진채 혈족을 이루고 있는 종친들은 대형 버스를 빌리거나 차량을 이용하여 묘제에 참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묘손과 청년회 종친들은 묘지와 주변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일은 물론, 제물을 준비하고 제복을 차리고, 참석자들의 배석을 준비하는 등 많은 비용과 갖은 수고를 아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묘제 당일이 되면 우선 입도조의 묘제 봉행을 위해 제관을 나누어 맡은 각파의 종손들은 제복을 준비하게 됩니다.

종친회에서는 1년간 벌여왔던 종친회 사업을 정리하여 묘제에 참가한 종친들에게 그 중 중요한 것은 보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가 참가한 때에는 후손들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던 장학사업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한 후손,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손, 미국에 유학 간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학업에 정진케 함은 물론 국가와 지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씨종친으로서 자긍심 고양에도 기여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을 가지고 입도한 조상들의 깊은 뜻을 한 개인이 온전히 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군다나 경험을 삶의 수단으로 살아왔던 농경 중심의 어제와는 달리, 세계를 무대로 세계인들과 경쟁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무기로 꿈을 실현해야하는 때가 왔습니다.

피를 나눈 혈연(血緣)의 가치로, 땅을 공유했던 지연(地緣)의 가치로, 젊음을 공유했던 학연(學緣)의 가치로 살아온 우리 어머님의 시대는 많은 애환을 남긴 채 지나가고 있습니다.

반만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화산섬, 제주에 살아오면서 우리 선인들은 땀과 눈물로 때 묻지 않은 ‘청정성’과 제주만의 ‘고유성’이라는 무한 가치를 우리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새 천년을 준비하는 이 때 우리 선인들이 남겨주신 소중한 가치를 활용해야함은 물론,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물려주어야 할 중요한 자산임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묘제를 통해 혈연의 결속, 지역사회의 통합, 국가발전 기여라는 큰 뜻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조상들이 남기신 유훈(遺訓)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세계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 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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