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서울시가 뉴타운개발 예정지역으로 지정한 331곳에 대하여 지정 취소하겠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뉴타운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채 지역주민의 사유재산권 행사문제, 그리고 투기과열등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의 대부분이 선거 공약으로 제시되어 무분별하게 뉴타운 개발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인 여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단순히 자산소득증가를 원하는 중산층의 욕망 충족을 위해 아파트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함으로써 중산층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려는 권위주의 정권의 이해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이 메커니즘은 '뉴타운' 계획 같은 도심재개발을 통해 기존의 낙후지역이 아파트단지로 대체되면서 중산층이 유입되고 이들이 보수정당의 지지기반이 될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많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치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뉴타운 개발은 낙후된 지역이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의 개발사업으로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을 개발하여 대단지 아파트와 넓은 도로와 공원으로 주성되는 미니 신도시로 재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배경에서 시작된 뉴타운개발은 기존의 소박한 마을의 풍경과는 다른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변하고 고밀도 개발로 인해 주차난의 심화, 그리고 고층아파트를 과밀하게 건축하여 주택 보급율을 높이고 개발사업의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지극히 상업적 가치판단에 치중되어 왔다. 무차별적이고 무계획적인 뉴타운개발은 한국의 주거문화를 왜곡시키고 도시의 풍경마저 기형적으로 만들어 삶의 질과 도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왔다.


제주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까지도 지역곳곳에 조성되고 있거나 조성될 도시개발사업은 지역여건에 맞지 않는 고층고밀화 아파트를 대량 생산함으로서 주택보급율과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인구의 집중화, 지가상승, 부촌(富村)과 빈촌(貧村)의 공간구분 등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제주사회 이슈중의 하나인 구도심재생 사업을 비롯하여 많은 도시개발사업이 삶의 질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혹은 경제적 논리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서울의 뉴타운 문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제주의 도시개발사업도 조만간 기로(岐路)에 서리라 생각된다. 서울시가 뉴타운 지정을 해제하는 대신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같은 저층주거지를 개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발정책을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향후 도시계획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비롯하여 제주지역에는 올드타운(노후지역)이 적지 않게 산재해 있다. 그러나 제주지역만의 올드타운 문제와 매력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올드타운의 물리적 환경은 노후화되어 있으나 성숙된 지역주민들의 결속력과 지역만이 갖고 있는 삶의 흔적들, 그리고 애착과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소들이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존중하면서도 불편한 생활공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도시개발사업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뉴타운이 아니라 올드타운 개발방식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지역정체성은 지역사회의 물리적 여건이 고려되고 지역주민의 삶이 지속되어 갈 때 가능한 것이다. 뉴타운 개발과 같은 방식으로는 지역 정체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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