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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 버리고 횟집 차린 사연은?조그만 방어횟집 운영하는 이용호씨

▲ 연동 마라도횟집 운영하는 이용호씨
마라도 일몰 풍경에 반하다…어부의 삶 시작

양손에 30㎏이 넘는 자연산 ‘부시리’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용호(48)씨. 손 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섬세한 프로의 손길이 생선의 식감을 최대한 살리는 듯했다.

제주시 연동 골목에 자리잡은 한 횟집을 찾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상호명만 쳐도 블로그·카페·소셜웹 등 수많은 글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제주를 다녀간 네티즌들은 ‘대방어의 참맛’ ‘최고의 횟집’으로 찬사를 쏟아냈다.

다른 횟집과는 달리 김치 외에는 흔한 전체요리도 없다. 오로지 ‘방어’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최근에는 방어철이 지난 터라 방어사촌으로 불리는 부시리로 손님을 맞이한다. 그것도 20~35㎏급 ‘대어’만을 취급한다.

인터뷰 도중 옆 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회를 한입 베어물고는 이씨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씨는 “직접 낚아서 먹어보고 연구를 많이했다”며 “다른 횟집에서는 쓰지 않는 부위를 가지고 최고의 횟감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방어횟집을 운영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졌다. 결혼을 앞둔 1996년 이씨는 아내와 단 둘이 제주로 여행을 왔다. 그들의 여행지는 마라도를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마라도의 일몰은 최고였어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첫눈에 확 반해버린 거죠. 시골 삶을 꿈꾸고 계획하던 중 삶의 정착지로 마라도를 선택하게 됐어요.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내려왔죠”

이씨 부부는 한 때 잘나가던 교사·대기업 사원이다. 17년간 교편을 잡은 이씨는 이른바 ‘스타강사’ ‘쪽집게 과외선생’으로 불리며 최고로 인정받는 수학선생이었다. 아내 또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K공기업 사원.

마라도의 삶은 비교적 순탄했다. 낚시광이던 이씨는 본격적인 어부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배 한척도 구입했다. 낚시꾼 천국으로 불리는 마라도에서 이씨는 가을·겨울철 방어낚시에 맛을 들였다. 이와 동시에 횟집도 차리게 됐다. 횟집은 의외로 꽤 잘 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마라도 생활을 하던 중 꿈이 생겼어요. 가칭 ‘마라랜드’를 건설하겠다는 포부였죠. 해수사우나와 찜질방, 펜션 등을 갖춘 곳을 설계했어요. 근데 욕심이 컸나 봐요. 남의 돈까지 빌려가며 시작한 투자는 얼마가지 않아 산산히 조각나고 말았죠”

결국 이씨 부부는 마라도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시내로 나오게 됐다. 마라도의 횟집 경험을 살려 새로운 시작을 설계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하고는 횟집을 차렸고 마라도의 꿈같던 삶은 모두 잊기로 했다.

이씨는 “모든 미련과 아쉬움을 버리고 횟집 경험을 살려 새롭게 장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라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남아서 일까. 그가 시작한 횟집 이름은 ‘연동 마라도 횟집’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이 퍼졌고 안정화의 길을 걸었다.

아내와 어렵게 얻은 10살 아들과 함께 셋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장삿일이 그리 쉬운 건 아니라고 말한다. 대방어의 참맛을 아는 사람들은 단골이 되어 찾아주지만 2~3㎏의 작은방어와 비교해 비싸다고 불평하는 손님, 취객들을 상대할 때는 힘들다고.

“제가 흡연을 안 하는데 매일 서서 회를 손질하는 저로서는 손님들이 피우는 담배에 눈이 따가워 힘들 때가 많아요. 제가 작업하는 앞 테이블은 금연석이라고 붙여 놨는데도 피우시는 분들이 많죠. 앞 테이블 금연만 잘 지켜주시면 감사하죠”

“사람 좋고 경치 좋은 제주가 삶의 전부”라는 이씨는 점점 밀려오는 손님을 받느라 손놀림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죽는 날까지 제주에 머물거라는 이씨는 최근엔 서울에 있는 형제들에게 제주로 내려오라고 손짓을 한단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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