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왜곡사례 즐비…도정정책·경찰사 여전히 왜곡
관광에도 4·3가치 못 녹여내…개발담론이 자리꿰차

올해로 제주4·3사건의 기억을 63년째 만나게 됐다. 4·3진상규명을 위해 부단히 달린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서 이제 제주4·3을 장식하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는 수식어는 상식이 됐다. 평화와 인권, 화해·상생은 도민들에게 자연스런 일상의 가치가 됐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2011년 제63주년 4·3을 맞는 오늘, 제주4·3에 담긴 정신과 가치는 제주도민들의 일상에 제대로 안착했는가. 제주4·3의 기억은 도민들이 일상에서 지키고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제주 공동체만의 가치·정신으로 승화했는가.

질문을 따라 답을 찾다보면 제주지역 안에서 4·3의 가치와 정신이 배제·왜곡되는 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3의 가치·정신이 일상으로까지 스며들기에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쌓인 현실이다.
4·3의 기억과 가치가 현재 제주도민들의 일상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받아들여지는지, 기억을 넘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4·3의 정신·가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1> 일상에서 배재·왜곡되는 4·3의 기억

# 공적기관이 배제·왜곡
제주지역 일상에서 4·3의 기억을 배제·왜곡되는 체계가 여전히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가동하는 주체가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공적기관이라는 데 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즐비하다.

단순히 제주를 모르는 외부인들이 가장 많이 찾을 도청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도청 홈페이지를 보면 4·3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공간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제주도청 홈페이지에서 ‘제주소개’를 보면 제주4·3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다. 제주도 연혁을 봐도 4·3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세계 7대 자연경관’이 버젓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4·3기억을 배제하는 현실은 유사한 비극을 겪은 광주광역시와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광주광역시 홈페이지에서 ‘빛고을 소개’를 보면 소제목의 ‘민주성지 광주’를 만날 수 있다.

5·18의 과정과 역사적 의미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했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와 연동해 당시 사진·동영상도 볼 수 있도록 했다. 5·18이 광주지역 정체성을 상징함을 보여주는 대표사례다.

제주경찰청이 발간한 ‘제주경찰사(史)’는 여전히 4·3을 좌익폭동이라고 왜곡,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나온 ‘제주경찰사 개정판’은 “1948년 4월3일 평화의 땅에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좌익분자들의 만행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을 가리켜 제주도의 4·3폭동사건이라고 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도민·4·3과 단체·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당시 경찰은 “발행된 제주경찰사를 전량 회수하고 4·3부분은 삭제, 재발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오히려 경찰서 내부에 제주경찰사 일부가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차원의 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지역 경찰 만큼은 4·3에 대해 여전히 왜곡된 역사관을 유지하고 있다.

# 개발담론에 밀린 4·3
지난 제280회 도의회 임시회에서 부결된 ‘제주4?3사건 생존희생자 및 유족 생활지원금 지원 조례안’은 공적기관의 4·3역사의식의 부재를 명확히 보여줬다.

조례 목적에 역사적 의미가 새겨지지 않아 도의원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당시 위성곤 행정자치위원장은 “5·18 관련 조례는 역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민주유공자와 유가족의 생계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4·3조례안은 단순히 노후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조례는 편한 노후 때문에 만드는 것 아니다. 조례 목적에 최소한 역사적 사명이 들어가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인식이 저변에 깔리다보니 전반적인 정책에서 4·3의 기억과 가치·정신은 배제되기 일쑤다.
4·3평화공원, 유적지 등을 기반으로 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실현도 더디다.

‘다크 투어리즘’은 일반적으로 역사적으로 비극적이거나 잔학무도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 또는 그런 사건과 관련이 있는 곳들을 여행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김석윤 ㈔공공정책연구소 대표는 ‘다크 투어리즘’의 의미에 대해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아픈 기억을 오늘에 끄집어내 아물어가는 상처를 덧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서 “기억을 재생시키고 희생자를 추념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실의 폭력 상황을 예방하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4·3평화공원 등을 방문하는 이들은 추모적 성격이 강하다. 4·3의 기억을 통해 본연의 가치·정신을 얻기위한 목적과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또 많은 방문객들이 여행상품 등 보다는 개별적으로 찾는 실정이다.

오히려 제주여행의 중심축은 ‘올레길’이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정 또한 이를 중심으로 관광상품화에 주력하고 있다. 제주4·3의 기억을 관광과 연계하기 위한 토대는 여전히 허약하다.
경제활성화·개발담론에 제주4·3의 가치·정신을 반영한 담론은 전혀 지역에서 생산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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