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식당 운영하는 황찬면씨

▲ 황찬면씨
노동자들 외로운 투쟁 지켜보다 음식들고 농성장 찾아
숨가쁘게 산 제주 23년 “사회적 약자 편드는 것 당연”

제주도청 앞거리 뜯겨져 나가는 천막이 힘없는 노동자의 절규할 자유마저 박탈시키려는 듯했다. 이를 지켜보던 황찬면씨(52)는 음식배달 오토바이를 멈추고는 한 숨을 내쉬며 이러한 생각을 품었다.

동병상련이었을까. 3주 전 천막이 철거된 그날 이후 황씨는 추위에 내몰린 농성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도민 한사람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이유뿐이었다.

“처음에는 바쁜 배달 일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유난히 추운 겨울인데도 50일이 지나고 100일을 넘겨도 그치지 않자 마음이 쓰이더군요. 천막마저 철거되니 얼마나 힘들겠냐고 생각했죠”

황씨는 아내와 함께 23년 동안 도청 인근 한자리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다. 음식배달을 하는 통에 그는 도청 앞 농성 풍경을 매일 지켜볼 수 있었다. 천막 철거 이후 그는 틈나는 대로 음식을 싸들고 농성자들을 찾아갔다.

마음이 여리고 순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좋은 일 한다는 기자의 말에 “전혀 아니”라고 발끈(?)하기도 했다. 다만 도민 입장에서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란다. 도민사회가 대안을 찾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없어 안타까워했다.

“사회적 약자에게 다른 약자들이 편들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저 또한 평범하고 약한 도민으로서 관심을 갖는 것뿐이에요. 농성이 끝날 때까지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제가 보일 수 있는 관심인 것 같아요”

서울 출신인 황씨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23년 전이다. 서울에서 측량기사 일과 전신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제주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내려왔다. 아내와 다섯 살 박이 어린 딸이 그와 함께했다.

내려오자마자 시작한 일이 식당이다. 서울출신이라 간판 이름도 ‘서울식당’으로 정했다. 29살 어린 나이에 처음 경험하는 식당일은 서투름과 실수의 연속이었다. 손님이 오면 아내와 서로 떠밀면서 주문받는 것 조차 부끄러워했다.

아무런 연고도 가진 것도 없던 그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일해야만 했다. 수년째 설·추석 연휴 빼고는 식당 문을 닫는 적이 없다.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조차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렇게 정신 없이 23년을 보냈다.

“그때 생각하면 참 고생 많았다는 걸 느껴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오름을 오르고 올레길도 걸어요. 작년에 딸 아이 시집보내고 나니 걱정도 덜었고 이제는 여유로운 인생을 살아야죠”

인터뷰 내내 옆에서 지켜보던 황씨의 아내도 거들었다. 아내는 “주말근무가 없는 공무원들처럼 최근엔 우리도 함께 쉰다”며 “공기 좋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제주에서 즐기며 살고픈 게 우리의 희망이며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제주 토박이라 해도 믿을 만큼 사투리가 훌륭하다. 자식 키우느라 힘든 시절 다 보냈으니 이제는 먹고 살 정도로만 일하리라고 황씨 부부는 생각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긴 명절연휴에는 전국 배낭여행도 다니곤 한다.

이들은 대학시절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그 시절 학사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게 이들의 일과였다고 한다. 매일같이 어울려 술 마시고 즐기다 보니 서로 눈이 맞아 함께 살게 됐다. 아이 먼저 낳고 힘겹게 살다보니 결혼식을 여태 올리지 못했다.

결혼식 계획은 없냐는 물음에 황씨는 “집도 없는 우리 형편에 결혼식은 무슨…”이라고 말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표정은 간절히 바라는 듯 결혼식이라는 말에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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