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교육]<24>사춘기 자녀와 소통하기
X: 점수가 이게 뭐야. 커서 뭐될래?
O: 열심히 했는데 속상했겠구나.
평가 대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기

“때려죽이고 싶거든요. 그런데 내 새끼를 때려죽일 수 없잖아요. 너무 힘이 들어요. 내가 왜 아이를 낳았는지 후회를 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에요. 미치겠어요. 여기서 교육을 받으면 좀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도와주세요”

중학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한 어머니가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 털어놓은 고백이다. 자녀의 사춘기를 겪어보지 않은 부모들은 “어떻게 자식을 때려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그러나 사춘기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라면 거침없이 변해가는 아이의 모습에 당황스럽고 놀랄 일 투성이다. 아이는 이제 다정했던 예전의 아이가 아니며 더이상 부모의 보살핌을 원하지도 않는다. 많은 부분에서 거칠게 대항하며 공격적이고 격정적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 해법은 없을까? 엄마와 아이가 함께한 사춘기 극복기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 이 책에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겪은 사춘기와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일상에서 겪는 사춘기 아이와의 갈등과 혼란을 ‘비폭력 대화’로 이겨낸 사례를 소개한다.

△엄마의 일기: 야! 너 말 다했어?
오늘은 중학교 중간고사다. 민혁이가 시험을 2시간 보니까 11시쯤 들어오리라고 예상했는데 오지를 않는다. 연락도 없고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헐떡이며 들어오는 민혁이.

민혁: 다녀왔습니다.
엄마: 너, 어떻게 된거야? 엄마, 걱정했잖아!
민혁: 애들하고 조금 놀다 왔어요.
엄마: 뭐, 놀다와? 시험 첫날 놀다 왔다는 얘기야?···너 이리로 와봐. 어휴, 담배 냄새. 너, 혹시 PC방 갔었니?
민혁: 예. 시험 점수가 별로 안나와서 기분 전환하려고 친구들이랑 한 시간만 한 거에요.
엄마: 너, 참 한심하다. 어떻게 정신 상태가 그 모양이야? 시험 첫날인데 2시간이나 노는 애가 어딨어?
민혁: 제가 밤까지 논 것도 아니고 잠깐 놀다 오는 것도 안돼요? 답답해서 그런거에요.
엄마: 뭘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외출할 것도 안 하고 기다려주니까 고작 한다는 말하고는.
민혁: 제가 기다려 달라고 한 거 아니잖아요? 외출하세요. 엄마가 원하는 거 하시라고요.
엄마: 야! 너, 말 다했어?

난 자주 아이들과 이런 식의 말다툼을 한다. 왜 이 모양일까? 아이랑 다퉈서 감정이 상하면 아이는 오히려 공부에 더 방해를 받고, 나 또한 기분이 나빠져서 한참 가슴이 아프고 힘들다. 오히려 아이가 답답해서 놀다가 온 것을 공감해주고 남은 시간 열심히 노력하도록 응원해 주면 좋았을 것을. 늘 이렇게 다 쏟아붇고 난 다음에야 좋은 방법이 떠오르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부끄러운 것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오늘처럼 감정이 북받쳐서 폭력적으로 말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의 일기: 엄마 원하는 걸 하시라고요!
짜증 난다. 시험 보는 날, 시간이 많다고 해도 긴 시간 온전히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험 때가 되면 엄마는 나보다 더 긴장을 한다. 약속도 다 미루고 시험 기간 내내 우리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으시다. 고맙긴 하지만, 그런 엄마가 가끔은 안쓰럽다. 우리랑 상관없이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고 지내셨으면 좋겠다.

시험 기간이 아니어도 엄마는 내 시간관리에 불만이 많다. 내 자유 시간을 내 기호에 맞게 쓰겠다는데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신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그냥 침대에 누워서 빈둥거리란 말인가?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 같은 경우도 그렇다. 시험에 대한 걱정은 내가 엄마보다 심하다.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2시간 놀고 들어갔지만 집중을 해서 하면 충분히 시간을 만회할 수 있다. 난 집중력이 그리 좋지 못하다. 그래서 1등이 목표가 아니다. 1등이 목표라면 오락은 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할 것은 하면서도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내가 즐기는 것들을 사사건건 막으려고만 하는 것인가?

△비폭력 대화: 서로의 욕구 바라보기
거짓말은 날로 늘어가고, 반항기는 쑥쑥 자란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보편적 징후다. 그러잖아도 초기 갱년기를 맞으며 기운 없이 지내는 엄마는 힘들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어디서 말대꾸야?” 상처뿐인 말들을 내뱉은 엄마는 곧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의 저자이자 부모교육 강사 이윤정씨는 자녀와 함께 ‘비폭력 대화’를 나누며 불화의 고리를 풀어갈 것을 제시한다. 책은 이씨가 아들을 키우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

비폭력 대화는 서로의 욕구를 바라보는 거다. 다른 대화법은 보통 ‘먼저 들어라. 양보해라. 상대를 받아들여라’라고 충고한다. 비폭력대화는 양쪽의 욕구를 중시한다. 일방적인 게 아니라 양쪽 욕구를 채우는 방법을 모아보자는 것.

자녀가 예민하게 굴 때는 “왜 신경질을 내니?”라고 묻지 말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부모교육 전문가 송지희씨는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준은 정해야 한다. 아이의 욕구에 동의할 수 없을 때 “왜 엄마 말 안 들어. 들어야 해”라고 비판하지 말고 엄마의 욕구를 설명한다.

특히 사춘기 자녀와 엄마사이의 비폭력 대화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보통 어떤 집단이 회의를 하면 다수결로 뭔가를 결정한다. 사춘기 시절, 부모와 자식 관계는 힘을 가진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의 싸움과 비슷하다. 부모들은 “내 말 무조건 들어!”라고 말한다. 비폭력대화는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에서 ‘힘을 가진’ 부모의 욕구만 중요한 게 아니고, 힘없는 아이의 욕구도 함께 중요하단 걸 알려주는 대화법이다. 서로의 욕구를 충분히 보고 합의하는 절차를 거치자고 강조하는 게 비폭력 대화의 핵심이다.

비폭력 대화는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을 기본 모델로 한다. 엄마 처지에선 ‘왜 이랬어!’가 아니라 ‘네 생각은 이런 거니? 엄마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는 자기 욕구를 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물론 아이의 욕구가 뭔지도 읽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공감을 얻으면 문제해결력이 생긴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엄마도 ‘그래. 속상했겠다. 네가 진짜 걔한테 어떻게 했는데…. 엄마 노릇 힘들지’라는 이야기를 다른 엄마한테 들으면 어느 순간, 분노가 가라앉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원 가기 싫다고 하면 ‘그래. 정말 가기 싫겠다. 얼마나 힘드니’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한다. 그러면 말 안 해도 아이 스스로 학원에 가야 한다는 걸 알고 행동한다.

△기린엄마, 자칼엄마: 사랑과 훈육
비폭력 대화에선 자칼관 기린이 등장한다. 기린은 초식동물로 온순하다. 암컷과 수컷이 협력해 새끼를 보호하고 자기를 보호한다. 맹수가 공격을 해오면 뒷발치기로 강력한 힘을 발휘, 자신과 새끼를 보호한다. 비폭력 대화에선 기린을 평화, ‘비폭력’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반면 자칼은 육식동물로 죽은 시체의 썩은 고기만 찾아다닌다고 해서 ‘폭력’을 상징한다.

부모 노릇은 크게 ‘사랑하기’와 ‘가르치기’로 나뉜다. 사랑을 할 땐 더없이 자애로워야 하고, 가르침을 줄 땐 엄격할 필요가 있다. 가르치는 건 훈육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훈육 먼저 한다. 내 자식은 나보다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다. 받아주기만 하는 게 기린 엄마는 아니다. 사랑을 먼저 전달하는 게 기린 엄마다. 내가 얼마만큼 아이를 사랑하는지를 아이에게 먼저 보여주는 거다. 그리고 ‘엄마 마음은 이거고, 네 마음은 이래. 그리고 엄마는 이걸 부탁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훈육은 그다음에 해야 한다.

부모교육 강사 이윤정씨는 “부모들에게 매번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건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철학을 품고 성장하는 것.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도 성장하라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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