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도서관에 앉아 취업준비에 한창이신가요. 매상은 줄고 종업원 임금 내칠 걱정에 연신 담배만 피워대는 사장님은 안 계신가요.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일을 고민하고 어떤 일이 힘이 되고 있는지요. 당신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제주도민일보>가 도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일상을 내보이는 가운데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희망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김동규·장화신·김명균 씨.
친절한 ‘관광 안내 도우미’ 김동규씨

“고객님, 관광코스는 정하셨어요? 제가 추천해드릴까요?”
여행사 관광지할인입장권을 판매하는 김동규씨(33·도남동)의 하루는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과의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공항 근처 렌트카 내 마련된 여행사 데스크가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렌트카를 대여하는 고객들의 발걸음을 입장권 판매데스크로 옮기는 것은 김씨의 몫.

“저희 가족이 가볼만 한 곳 추천 부탁드릴께요. 인원이 많아 입장권 먼저 구입하고 가야겠어요.”
“여기 잠수함이랑 승마 할인입장권도 판매해요?”
손님들의 물음에 김씨는 단연 “Yes”다.

고객들에게 도내관광지에 대한 꼼꼼한 설명을 하다보면 어느새 고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코스의 티켓을 김씨로부터 구입한다.

지난 11월 입사한 김씨는 도내 관광지 중 안 가본 곳이 없다.

판매에 앞서 모든 곳을 ‘직접’ 봐야 관광객들에게도 자신 있게 안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직접 다녀오고 느낀 점을 그대로 고객들에게 전달해줘요. 정말 ‘아니다’ 싶은 곳도 있거든요. 그런 코스를 고객님께서 문의하시면 저는 ‘이러이러해서 별로였다’고 솔직하게 알려드립니다. 다들 만족스러워해요.”
김씨는 덧붙여 말했다.
“제주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제주’를 알린다는 게 보람차요. 제주가 한 번 다녀가면 또 오고 싶은 관광지가 됐음 좋겠어요. 다녀가시는 고객님들께 뭐가 아쉬웠나 물어보면 바가지 요금의 문제가 크더라구요. ‘사업적인 관광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남겨지는 게 아쉽습니다.”

그에게는 20대 시절, 4년에 걸쳐 뉴질랜드와 중국에 머무른 경험이 있었다. 당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며 어울리던 시간이 그에게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한다.

“지역 곳곳 돌아다니며 겪었던 문화적 경험들을,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제주도에 접목시킬 수 있어 기뻐요.” 그가 미소 짓는다.
 


33살 젊은 나이에 특급호텔 주방장, 김명균씨

최근 방영했던 ‘파스타’라는 드라마가 끝난 후 주변 사람들은 명균씨를 보고 ‘셰~엡’이라고 부른다. 대화를 주고받다가 그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친구들은 말머리에 “네~셰엡”을 연발하곤 한다.

김명균씨(남·33)는 특급호텔 주방장(셰프)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주방장을 달았지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얻은 것과 보람도 있었지만 눈물, 좌절, 고통을 한 바가지 짊어 매고 다녔다. 그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십 수 년을 객지생활로 지냈다.

대학 졸업 21살 나이에 조리과 전공을 살려 S호텔 외식사업부에 몸을 담았고 고생은 시작됐다. 기름에 댄 자국이 두 팔을 휘감았고 오래 서있다 보니 허리 통증도 말이 아니었다. 고참 요리사와 다툼으로 마음 고생도 했고, 마음이 안 맞아 다른 레스토랑으로 옮겨 다니기도 했다.

“사실 마음이 맞지 않았다는 것보다 배울 게 없었어요. 더 큰 꿈을 위해 새로운 곳에서 실력을 쌓고 싶었죠.”

대기업 소속 식품회사에도 다녔고 특급호텔 요리사로 지내기도 했다. 1년간 주경야독하며 영어공부를 한 후 괌에 있는 호텔을 지원, 2년간 이국땅에서 새로운 경험도 쌓았다.

지금 명균씨는 석 달 전 고향으로 돌아와 탑동에 있는 모 특급호텔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개업과 동시에 취업한 곳이라 오픈 준비를 위해 하루 최대 17시간 넘게 일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명균씨는 즐거웠다.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말이다.

“33살 젊은 나이에 ‘주방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놀라워해요. 단지 이것만 알아줬으면 해요. 남들보다 두배 세배 열심히 배웠고 실력 쌓았다는 것이요.”

어린 시절 뭔지 모르고 불발된 최루탄을 갖고 놀다가 손 안에서 터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장애를 갖고 살았지만 최고 요리사의 꿈에는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일만 하다 보니 연애도 제대로 못해봤다. 명균씨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일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어요" 입시학원 원장 장화신씨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유명 입시 학원 원장 장화신씨(38).

그는 어린시절 어린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5년간 신문배달을 하는 등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공부는 그에게 사치였다.

근근히 아르바이트와 일을 하며 상업고등학교, 전문대 등을 어렵게 마쳤고 호텔에서 8년동안 근무를 했다. 장씨는 녹록치 않은 형편에 가정을 꾸렸고, 10년전 아내의 권유로 학원을 운영키로 마음먹었다.

“아기 분유값도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살림에 신용도도 낮아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왠지 다시 시작하고 싶었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학원을 인수한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제가 가르칠 능력이 어디 있겠어요. 처음엔 학원차 운전만 했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서 서울지역의 교육정보, 상담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유명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었기에 장씨는 더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했다.

요즘도 그는 매일 아침 일찍 학원에 출근, 공부를 시작한다. 아이들을 위한 창의적 학습법을 개발, 그가 운영하는 학원은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특히 그의 학원에서 수강을 받은 학생들은 국내외 유명학교 진학은 물론 각종 올림피아드 등에서 300여개의 상을 휩쓸었다.

장씨는 경제적으로 어린아이들에는 학원비를 받지 않는다. 자신이 마음껏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처럼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꿈마저 버리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래서다.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해서 잘 가르치진 못하지만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어요. 입시 학원이라고 무조건 대학 진학만을 꿈꾸는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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