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정 기관 '주의' 통보..."솜방망이 처벌"
도, 집행부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잘못 시인

제주특별자치도가 도의원 보조금심의위원회 재심의 관행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행정안전부와 제주도감사위원회 유권해석을 숨겨왔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3일 속개된 제387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상봉) 제4차 회의에서 제주도 예산담당관이 지난 5월 행정안전부에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 심의대상 여부’를 묻는 공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추궁이 이어졌다.

그 동안 제주도는 보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제주도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증액을 다시 심의해 왔다. 이 과정에서 도의원들은 “의결까지 거친 예산안을 다시 심의하는 건 '옥상옥' 문제가 발생한다”며 행안부와 도감사위에 법령 위반 여부를 해석해달라는 질의를 하기에 이른다.

이 점에 대해 행안부는 ‘지방재정법’ 제32조의2 제3항에 따라 자치단체장은 지방보조금 예산을 편성할 때 미리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나, 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해 다음연도 예산에 반영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회신했다. 다만 지방의회의 증액요구에 대한 지자체장의 동의는 구속력이 없을 뿐 더러 예산편성 과정이 아닌 심의·의결로 그 동안 제주도정이 잘못해 왔다고 판단했다. 또한 지방보조금 심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결국 제주도가 그간 보조금심의위원회를 통해 일명 '지역구 챙기기'라고 모르쇠하며, 도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증액을 다시 심의해왔던 관행을 쉬쉬해 왔던 셈이다.

도 예산담당관의 행안부 질의 내용을 보면, 지난 5월13일 공문 발송 후 80일 뒤인 8월3일 행안부로부터 ‘위원회 심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답신이 보내왔다. 그러자 제주도정은 재차 국민신문고(8.25)를 통해 이 건을 문의했고, 9월8일 ‘의회 고유 권한인 예산안 심의·의결 과정에서 증액된 보조금의 예산까지 보조금심의위원회를 거치도록 한 법적근거는 없으므로 감액대상을 보기 어렵다“는 답을 해왔다.

제주도의회 고현수 의원

이날 고현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도의회가 지방보조금 심의대상 적정성 여부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보공개법을 들먹여 두 번이나 연장한 이유가 뭐냐"며 "의회가 옳다는 조사결과를 인지하고, 도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추가 질의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고 의원은 또한 "도감사위는 이를 두고 제주도정에 기관 '주의'를 통보했다"며 "이게 과연 '주의'로 그칠 문제냐"고 호통쳤다. 게다가 "당시 보조금심의위를 관장했던 예산담당관은 최근 인사단행으로 도감사위 사무국장으로 발령났다"며 ”이게 무슨 감사냐. 솜방망이 처벌에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고 있다“고 맹비난 했다.

이어 "법적, 제도적 근거 없이 의회의 의결권을 무시하고, 무력화시켰다“며 ”서로 행정력을 낭비시킨 사태에 대해 제주도정이 의회와 도민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답변에 나선 현대성 기획조정실장은 "보조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자 한 의도였는데 결과적으로 도지사의 동의를 얻고 증액한 예산을 다시 심의받도록 한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집행부가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점 사과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작 안우진 예산담당관은 "사과한다"라는 표현 없이 "어쨌든 의회 심의 의결권을 존중하겠다"라는 답변해 고성이 오갔다. 의원들은 “어쨌든은 빼라”고 일제히 호통쳤다.

이상봉 위원장(더불어민주당, 노형을)은 "결국 보조금심의위를 소집한 예산담당관실에서 문제가 벌어진 일”이라며 “법적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 했다. 이에 다시 안우진 담당관은 "보조금심의위가 법률적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며 "다만 의회에서 심의 의결된 것 중 증액된 부분에 대해 집행과정에서 투명하게 이뤄지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해 불씨가 재점화 됐다.

이 위원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 이번 일이 한순간의 해프닝이었다는 것이냐"며 "기조실장은 사과하는데 담당관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에 현대성 실장은 "제가 총괄하는 입장에서 거듭 사과드린다"며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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