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2 | 캔버스에 유채물감 | 81×105㎝ | 스위스, 바젤 미술관)

독일 뮌헨에서 청기사파를 설립한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가 무수한 이론적 논쟁을 벌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청기사파의 연감을 다룬 「마스크들」이란 제목의 에세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우구스트 마케(1887~1914)는 이론가라 할수는 없었다. 청기사파와 그룹전을 개최하면서 마케는 그들의 관심을 공유하게 되었으며, 특히 회화의 ‘원시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케는 쇼핑하는 사람과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 공원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비록 표현주의자로 일컬어졌다 할지라도 마케는 본질적으로 색채주의자였다. 베를린 다리파의 불안감과 청기사파의 영적분투 모두가 그의 시각 언어를 조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원 레스토랑」은 화면속의 뜨거운 열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성한 나무 그늘아래서 차와 신문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있는 존재라기 보다 단순한 형태들처럼 보인다.

소용돌이치는 지면의 주황색, 구성속의 하얀색, 모자들의 리듬감은 마케가 순수추상에 이미 근접해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는 결코 순수추상에 완전히 동참하지 않았으며, 외려 로베르 들로네의 오르피즘을 더 선호했다.

마케는 색채관계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열중했으며, 형태의 분해와 해석에도 몰두했다. 1914년 4월, 그는 파울 클레와 함께 튀니지를 방문했다. 이 때 본 빛과 색채는 클레와 마케의 작품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한편 돌아오는 길에 군에 징집된 마케는 1914년 9월 전선에서 27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짧은 생애 동안 마케는 많은 것들에 심취했으며, 뛰어난 색채화가임을 손수 입증했다. 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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