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산, 제주의 경쟁력-보전없는 개발도정

제주는 국제적인 보호지역으로 세계가 인증한 환경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8000여 종의 다양한 생물 종은 물론, 오름과 곶자왈, 용암동굴 등 제주만의 독특한 환경자산을 지녔다. 섬 지역으로 독자적이고 효율적인 환경정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고 각종 친환경적인 녹색기술·도시개발을 위해 테스트베드 확보도 용이하다. 그런데 왜 기회와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각종 난개발에 환경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을까. 단순한 보전 차원을 떠나 가치 상승과 친환경개발이 공존하며 도민들이 뒤따를 수 있는 ‘아젠다’를 설정해야 할 시점이다.

# 재앙 예고에 방관하는 제주도

최근 ‘상괭이’로 불리는 소형 돌고래 100여 마리가 내부 개발중인 새만금방조제 내측에서 떼죽음한 채 발견됐다. 하지만 새만금방조제 운영기관인 농어촌공사는 상괭이 떼죽음이 수질문제로 비화할 것을 염려해 이를 몰래 소각처리하는 등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양경찰은 환경 전문가들에 의뢰해 상괭이 유입 경로와 떼죽음 원인을 파악 중인 가운데 환경재앙이 닥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만금 개발사업 이후 상괭이 1~2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지역 어민들이 자주 목격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9일 오전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대에도 해군기지 현장사무실 개소식을 강행했다. 이제 새만금과 같은 바다매립 작업이 본격화 될 예정으로 환경재앙의 서막을 열었다. 해군기지가 제주의 환경자산을 위협하고 있지만 제주도는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해군기지는 연안을 중심으로 12만평의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며 바다매립 면적도 기존 제주도의 공유수면매립공사의 최고면적인 10만평에 이른다. 특히 강정바다는 청정해역을 자랑하는 곳으로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천연기념물인 연산호군락이 대규모로 서식한다.

반면 도 당국은 이러한 제주환경을 상품으로 민간단체의 상업이벤트 ‘세계 7대자연’에 온 행정력을 쏟아 붓고 있다. 제주환경 보전에 방관하면서 생물권보전지역, 람사르습지,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인증에 이은 간판 따기에 ‘놀라운’(wonder) 집착을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민단체가 자중할 것을 당부하고 있지만 제주도는 귀를 틀어막는다. 제주참여환경연대 고유기 정책위원장은 “세계 7대자연 홍보에 수십억원을 쓰면서 지질공원 예산은 고작 3000만원에 그친다”며 “제주환경 보전·관리 홀대에 염려부터 앞설 뿐”이라고 말했다.

# 굳어진 카르텔이 난개발 부추겨

제주도의 환경보전 의지 부재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공유지인 중산간의 광활한 초지, 지하수 함양의 보고 곶자왈 등을 대규모 ‘관광개발용지’로 둔갑시켰다.

수백만평의 곶자왈을 헐값에 매각해 골프장 조성에 일조하는가 하면 유네스코가 환경자산으로 인증한 한라산 중턱에 개발사업 승인을 남발하고 있다.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신뢰성 있는 검증체계를 갖춰 아름다운 제주 경관에 걸맞은 친환경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도 간판 따기처럼 투자유치 실적 올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제주도가 ‘가장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도시’라는 의미를 부여한 ‘환경수도’ 조성계획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에 세계환경수도 조성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몇몇 도시들이 ‘환경도시’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개발-보전 갈등에 새로운 환경정책 모델을 제시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제주는 난개발·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아 한참 멀었다는 이유에서다.

환경수도의 필수조건으로 친환경 거버넌스를 구축해 국내외 도시보다 뛰어난 환경메카로 만들어야 하는데 제주의 민·관 파트너십은 환경 파괴를 조장하고 개발이익을 챙기는 ‘카르텔’로 단단히 굳어졌다.

지난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발표한 ‘곶자왈 도립공원’ 조성에는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일대 약 230만㎡에 480억원이 투입된다. 계획안에는 곶자왈 사유지를 기증받아 공원화할 예정이었지만 여의치 않으면 ‘매입’ 방침으로 선회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원 예정지 중 일부가 모 일간지 사주의 친인척 땅으로 알려져 있는 터라 예정된 특혜였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또한 이 일간지 사주는 C건설업체 대표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빙장’ 등의 아이스 테마파크 조성에 이미 ‘시공사’로 낙점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관 카르텔 속에 관·언 유착까지 더해지면서 난개발·특혜에 대한 도민사회 비판의 칼날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학계 관계자는 “투자유치에 따른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지 말고 제주 전체 발전을 위한 객관적인 검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카르텔 유착고리 등을 근절하는게 급선무”라고 충고했다.

# 도민 공감할 환경아젠다 제시를

지난 노무현 정부는 강력한 정치‘개혁’을 예고하며 기득권 세력과 싸우고 그들이 누리고 있던 부당한 권리를 되돌리려 애를 썼다. 그러나 공직사회 안팎의 견고한 유착, 모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아젠다 설정 부재가 완벽한 개혁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근민 도정은 세계환경수도를 선언하며 환경 아젠다를 제시했지만 하부 조직들이 뒷받쳐주지 않는데다가 도민들의 수긍을 이끌 수 있는 ‘방향제시’ 부족으로 자칫 ‘껍데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학계 관계자는 “모든 도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따라야겠다는 아젠다를 제시해야 하는데 미흡하다”며 “기존 카르텔을 과감히 깨부수고 민·관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민사회가 우 도정에 거는 기대는 크지만 걱정도 만만치 않다. 환경재앙이 예고되는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윈윈’ 해법도 내놓지 못하면서 실망감만 쌓이고 있다. 특히 민선5기 출범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측근인사로 조직 개혁의지 부재와 전문화 미흡 등도 지적된다.

일례로 개발정책을 지휘할 도시디자인본부의 수장에 토건개발 카르텔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특정고교 출신을 발탁하면서 유착근절 의지 유무를 가늠케 했다. 말로는 선(先) ‘보전’을 주장했지만 행동은 ‘개발’로 흐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임 도정의 환경정책은 개발논리에 묻힌 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선5기의 환경정책 또한 개발유착·특혜에 힘을 잃는다는 우려와 함께 세계환경수도 계획에 부응하는 세부적인 정책과 조직 전문성이 모두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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