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만에 아버지 유해 찾은 양춘자씨 사연 ‘눈물 바다’

제72주기 4.3희생자 추념식에서 '70년만의 귀가' 유족 사연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김대호 군. [사진=공동취재단]

‘‘할아버지를 어떻게 불러야 하지?’ 할머니의 아버지는 증조 외할아버지. 그 말은 어렵고, 왠지 낯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를 ‘똑똑이 할아버지’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똑똑이 할아버지의 외동딸인 할머니는 늘 ‘우리 아버지는 신촌국민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똑똑이었대’라고 말씀하셨거든요. 할아버지 얘기만 하면 눈물부터 보이는 우리 할머니가 유일하게 활짝 웃으며 하는 얘기셨어요. 제가 지어드린, ‘똑똑이 할아버지’라는 별명, 마음에 드시죠“

"똑똑이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 할머니는 아버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도 설쳤어요. 그렇게 긴장한 할머니 모습은 저도 처음 봤어요. 72년 만에 만난 똑똑이 할아버지 유골함 앞에서 할머니는 세 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한참을 엉엉 우셨어요"

제72주기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가운데 아라중학교 2년 김대호 군의 ‘70년만의 귀가’유족 사연을 담은 편지가 낭독돼 많은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4‧3의 세대간 공유를 위해 4·3 희생자 故 양지홍 님의 딸 양춘자 님(당시 3세)의 손자인 김 군이 낭독한‘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닌 제주의 이야기’는 제주국제공항에서 유해 발굴, 유전자 감식 결과 올해 1월 신원이 확인돼 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온 비극사다.

양씨의 아버지는 1949년 봄 제주시 조천읍 신촌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토벌대에 연행, 불법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같은 해 10월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비행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날 김 군의 편지에는 오랜기간 아버지의 시신을 찾지 못하다가, 아버지의 유해를 찾고 난후 올해 1월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를 향하는 할머니의 애통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다.

김군은 '똑똑이 할아버지'께 4.3을 널리 알리는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군은 “이담에 커서 똑똑이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돼 제자들에게 4.3에 대해 얘기해주고 싶다”며 “끔찍하고 아픈 역사지만 모두 제주 4.3을 깊이 알고 공감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편지를 읽어 내렸다.

이어 할아버지가 계신 하늘을 쳐다보면서 김군은 “그리고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얘기해줄 거예요. 제 꿈을 이루는 모습 하늘에서 지켜봐 주실거죠"라는 말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이날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손자의 모습을 보며 양씨는 연신 눈가를 훔쳤다.

증조부께 보내는 '70년 만의 귀가' 편지 낭독을 마치고 온 김대호 군을 다독여주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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