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수선집 양영순씨

태어난지 9개월만에 소아마비 판정
포기하지 않고 옷수선으로 살아온 57년
자신보다 어려운 장애인 도우며 20년 선행

제주시 중앙지하상가에서 20년 가까이 옷수선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양영순씨(57·지체장애 1급). 그녀는 태어난지 9개월만에 소아마비를 앓고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됐다. 부모님은 양씨가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생활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양씨의 생각은 달랐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직장을 갖고 삶을 꾸려갔다. 양씨도 ‘삶’을 이끌 직업이 필요했다.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하던 끝에 옷만드는 일이라면 걷는게 불편한 자신이 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무작정 의상실을 찾아다니며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걷지 못하는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의상실에 막내로 들어가면 각종 심부를을 하면서 일을 배우게 되는데 저는 몸이 불편하니 오히려 상전 노릇을 해야하잖아요. 그래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던 거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17살에 의상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재봉틀과의 인연을 시작됐다. 그녀는 보다 많은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곳에 만족하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직장을 옮겨 다녔다. 처음 발을 들여 놓기는 힘들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그녀를 거부하는 곳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24살 무렵 남의 일처럼 여겨졌던 결혼과 함께 두 아이도 낳았다. 어느샌가 자신의 장애를 잊게 됐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장애를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82년 장애인복지카드를 신청하라는 공무원의 연락을 받고 신청장소로 향했던 그녀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모습을 마주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가 별로 커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그들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시 세탁소를 운영하던 양씨는 그때부터 매달 2만원의 회비를 내며 장애인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와이셔츠 한벌을 다리면 190원의 요금을 받던 시절이다. 그렇게 양씨는 스스로의 장애를 잊은 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20년 넘게 도우며 살고 있다.

3년전부터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사회복지시설의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단추달기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옷감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어주면 수강생들이 그곳에 단추를 다는 것이다. 단추를 달면서 헝겁에는 하트·태극기 등 다양한 문양이 생겨난다. 첫 시간에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소란스럽던 수강생들이 지금은 양씨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사회복지사 분이 단추달기 수업을 시작한 이후로 수강생들이 몰라볼 정도로 차분해 졌다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열심히 따라해주는 수강생들 덕분에 오히려 제가 더 고맙고 뿌듯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그동안 받은 표창장·감사장이 그녀의 수선가계 한쪽 벽을 메우고 있다. 그녀는 지난 2009년에는 ‘올해의 장애인상’의 대통령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상이 아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옷수선 일을 하면서 한번도 귀찮거나 하기 싫은 적이 없었어요. 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거에요. 장애인을 돕는 일은 제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제주도민일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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