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주방장 출신 서인교씨

▲ 대통령의 밥상 책임지던 서인교씨
작은 추어탕 가게서 즐기며 요리생활 하고파

“쯧쯧 미꾸라지 놈들은 천성이 천박하니 어쩔 수 없지” 무협소설 ‘추어탕전’의 한 글귀다.

미꾸라지는 물을 흐리는 주역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민어나 숭어처럼 생선에 붙는 ‘어’(漁)자도 죽어서야 붙는 신세다. 살아선 천한 이름의 미꾸라지로 불리다 탕 속에 들어가 점잖이 살신성인해야 추어(鰍魚)로 불리며 대접받는다.

과거 배고픔을 달래주던 서민들의 대표음식인 추어탕. 서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는지 서민 출신 대통령들의 입맛을 당겼는지는 모르지만 전·현직 대통령들의 밥상에 끊이지 않고 오르던 메뉴가 바로 추어탕이라면 믿겠는가.

대통령의 입맛을 책임지던 청와대 주방장 출신 요리사가 최근 제주에서 추어탕집을 개업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수소문 끝에 찾은 가게 주인장 서인교(46)씨를 통해 전·현직 대통령들이 즐기던 추어탕의 비밀과 그의 청와대 입성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이 즐겨찼던 추어탕

서씨는 인터뷰를 요청하자 처음엔 손사래를 치며 “조그마한 가게 하나 차려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청와대를 팔아먹는 이름장사치가 될까봐 걱정된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청와대에서의 활약상을 들려달라고 부탁하자 “어르신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어서 행여 누가 될까봐 어렵겠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다만 8년의 긴 생활이 성실을 바탕으로 한 ‘인정받는 요리사’ 였음을 짐작케 했을 뿐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최근 이명박 대통령까지 8년 넘게 청와대 주방을 책임졌어요. 전라도·경남·경북 등 각기 다른 지역 출신이셨던 ‘어르신’들의 입맛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죠”

김 전 대통령은 전라도 출신이지만 걸쭉하거나 짜지 않은 추어탕을 즐겼다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식 맑은 국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서씨는 오랜시간 ‘어르신’과 함께 하면서 누가 먹어도 입맛에 맞도록 표준화(?)된 추어탕을 만들어냈다.

▲ 경남 통영의 싱싱한 멍게가 들어간 비빔밥과 전북 부안에서 공수한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
서씨의 조그마한 가게의 메뉴는 추어탕과 멍게비빔밥이 전부다. 대통령의 즐기던 그의 추어탕은 만인의 입맛에 맞도록 새롭게 태어나 제주도민에게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계속된 청와대 입성기는 흥미를 더했다.

◇소문난 요리사 결국 청와대 ‘러브콜’

경북 경주 출신인 서씨는 경주호텔학교에서 조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서울 특급호텔에 취직해 요리사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때마침 지인으로부터 제주에 살고 있는 한 여인(지금의 아내)을 소개받았다. 첫눈에 반한 그녀와 결혼을 위해 제주에 있는 호텔로 직장을 옮겼을 정도다.

요리사의 경험은 서울·제주의 호텔부터 시작해서 국내 모 대기업이 직영하는 베이징·도쿄의 레스토랑까지 다양했다. 1998년경 서씨는 오랜 해외 근무를 마치고 결국 제주로 돌아와 제주시내 한 유명 호텔에서 근무하게 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가 이 호텔에서 열렸고 그의 요리는 결국 청와대로부터 ‘러브콜’을 받기에 이른다. 해외 근무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서씨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제주에 남겨두고 홀로 상경해 긴긴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 근무한다고 봉급을 많이 주는 건 아닙띠다. 식단짜기부터 해외순방 일정까지 다 소화해 내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365일 쉬지 않는 ‘멀티플레이어’ 요리사로서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사명감이 없었다면 중도 포기했을 거에요”

그래도 보람은 컸다고 한다. 자신을 통해 제주출신 요리사 후배를 대거 청와대로 입성시키는 등 후배 양성에도 일조했다. 또 도지사나 제주도내 기관장들이 청와대 행사에 왔을 때는 힘있는 정치인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즉석에서 자리도 마련했다고 한다.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제주에 와서 7월에 가게를 차렸어요. 지인들의 도움이 컸는지 운이 따랐는지 손님들도 제법 찾아오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다만 청와대에서 종종 뵈었던 제주 인사분들이 여기선 만나 뵙기 힘드니 아쉽고 서운하다는 생각을 해요”

◇‘최고’ 명성은 뒤로 욕심 없이 살고파

젊고 할 일 많은 서씨는 현재도 특급 호텔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오라고 손짓하는 곳이 많단다. 그러나 보잘 것 없지만 가게를 내어 손님들과 직접 교감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주며 마음 편히 요리하는 게 그의 유일한 행복이다.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렸는데도 험한 길을 마다하고 찾아와 주는 손님들에게서 고마움과 보람을 느꼈어요. 이 조그마한 가게가 널리 알려지기보다 제대로 된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찾아주길 원해요. 산악인에 비유하자면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올랐는데 더 이상 오르고 싶은 욕심은 없답니다”

훗날 당당히 어(漁)로 인정받는 미꾸라지와는 반대의 길을 걷는 건 아닐까. 젊어서 최고 요리사로 인정받은 서씨는 부와 명예를 멀리한 채 소박한 가게에 만족하며 즐기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한겨울 몸을 녹여 줄 서민 보양탕, 아니 대통령이 찾던 추어탕 한 그릇 먹고 싶은 날이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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