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기획> 한태일의 영화판 이야기 <3>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영화계에서 반세기를 보낸 많은 선·후배동기들이 있겠지만 현역으로 활동하는 한명으로서 많은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은 순간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본명을 쓰지 못하고 성(姓)을 뺀 ‘태일’이라는 가명을 써야 했던 시절을 겪기도 하였고 뜻하지 않은 생활고로 많은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영화배우라는 직업이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꿈’으로 자리잡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전쟁 후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기 전 많은 영화들은 전쟁과 반공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영화마다 권선징악의 법칙에 따라 선하고 착한 이들은 언제나 성공하였으며 자기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들은 어김없이 하늘의 철퇴가 내려졌다.

사실 지금처럼 다양한 주제와 등장인물들이 영화에서 거론되는 것조차 검열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단골로 등장하는 검사·경찰·형사 등도 정의의 편에서 활약하는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면 시나리오에서 일단 고려대상이 되었으며 노출에 관해서도 엄격해 80년대 이른바 국가 주도적인 노출열풍이 불기 전까지는 남자배우건 여자배우건 꼭꼭 싸매고 영화에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 당시에는 지금처럼 엔터테이너라는 개념이 없어서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왠지 영화와 함께 일생을 보내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면 안 되는 것처럼 인식이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판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였다. 지금 젊은 친구들이 가수로 시작해서 드라마로, 영화로 영역을 확대해 가는 모습은 전세대와는 확실히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선후배사이의 관계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당시에도 일류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많은 배우들이 있었지만 인기에 상관없이 현장에서는 선후배들간의 예의와 의리라는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녹아 있어 서로 존중하려고 애쓰고, 작은 일에도 서로 배려하는 것이 현장 분위기였던 반면에 지금 영화 촬영장에서는 그런 모습을 쉽게 보기 힘들다. 물론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바쁜 일정으로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장소로 바쁘게 이동해야 하는 면도 있고 잠시 쉬는 시간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느라 좀처럼 얼굴보기도 힘든 실정이라 지금의 현장은 조금은 삭막하기까지 하다. 

촬영이 끝나면 여관방에 모두 모여 한쪽에서는 라면을 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주를 먹으며 내일 촬영 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던 현장이 조금은 그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에는 영화대본이 나오고 배우들이 결정이 되면 대부분 충무로에 모여서 버스로 같이 촬영장으로 이동하였다. 몇 시간씩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서로 인사하고 소개하며 어느 정도 팀웍이 맞은 상태에서 촬영이 시작되고 그렇게 다시 되돌아 올 때까지 그야 말로 한솥밥을 먹게 되니 작품을 같이 했다면 같이 걸리는 장면이 있건 없건 가족 같은 친분이 형성되었었는데, 이런 것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자기 촬영 분이 없을 때는 마찬가지로 촬영이 없는 다른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현장에서 이런 저런 부족한 일손을 돕기도 하면서 함께하는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서로 도와가며 끈끈한 우정을 다지곤 하였는데,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추억들이 참 많이 기억이 난다.

영화는 시대를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50년대 초반의 영화는 당시의 시대를 대변하였고 2010년 영화들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들. 특히 영화를 포함한 문화계 전반에 있는 자유와 시대책임 정신만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여러 변수들을 수용하더라도 계속 문화인들 가슴속에 살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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