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운영하는 진영숙씨

시어머님 하시던 정육점 이어 한자리에서만 28년
손님 발길 ‘뚝’ “축산농가 생각하면 불평도 미안”

구제역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고 있다. 축산농가들의 피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동네 정육점이나 육류를 파는 식당들도 구제역 확산으로 한숨이 깊어졌다.

남편과 함께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진영숙씨(53·건입동)도 마찬가지. 그녀는 시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정육점을 이어 건입동에서만 28년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7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가게를 지키고 있지만 요즘 가게를 찾는 손님의 발길이 거의 없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TV뉴스에서는 구제역 발생지역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육류 소비를 줄이다보니 피해가 없을 수가 없어요. 아직까지 제주도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손님들은 뉴스를 볼 때마다 아무래도 고기 먹기를 꺼려하게 되잖아요”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침에 삶아 놓은 삶은 족발이 거의 그대로 있다. 이전에는 저녁 7시무렵이면 다 팔렸다고 한다. 당일 삶은 족발은 그날 팔지 못하면 그대로 버려야 하기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도 찾는 손님이 있으니 삶아 놓기는 해야죠. 그렇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돈 몇푼 아끼자고 다음날 팔게 되면 큰일 나요. 또 단골 손님들은 맛만 봐도 언제 삶은 건지 알죠”

30여년을 정육점을 운영해오면서 이같은 사태를 겪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상황이 빨리 해결되길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축산농가가 입는 피해를 생각하면 불평하는 것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사실 구제역보다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대형마트다. 도내 곳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부부가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하루에 돼지 1마리는 문제 없이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형마트가 하나둘 문을 열면서 한달에 10마리 파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마트가 생기기 전에는 고기를 사려면 다들 동네 정육점을 찾았잖아요. 요즘은 마트 이용을 많이 하면서 동네 정육점에서 장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나마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다보니 단골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주는 거죠. 구제역이야 언젠가 지나가겠지만 마트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잖아요”

그동안 대형마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동네슈퍼에 대한 지적은 많았지만 그밖의 다른 업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오히려 ‘재래시장 살리기’만 정책적으로 추진하다보니 골목길 지역상권은 또다시 피해를 받아왔다.

“장사야 잘 되면 좋겠지만 이제는 큰 기대는 없어요. 아이들도 다 커서 자기들 할 일 하면서 살고 있으니 돈 들어갈 일도 많지 않고요. 그렇다고 놀 수는 없으니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부부가 먹고 살 정도만 벌면 만족해요”

<제주도민일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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