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공사재개 항의한 주민·시민단체 34명 강제연행
경찰, “업무방해” 규정 신속대처…해군특위 늑장 방문

해군기지 공사현장에 진입하는 레미콘 차량의 굉음 앞에 주민들의 “반대”외침은 속절없이 묻혔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가 다시 시작된 27일 오전 공사현장 입구를 막아선 주민들과 도내 시민사회 및 종교단체 관계자들은 ‘법 원칙’이라는 이름아래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었다. <관련기사 3면>

‘법’은 강정주민들에게 그야말로 가혹했다. 제주도정과 도의회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한 데에 소송을 걸었던 강정주민들은 법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반면, 공사업체는 ‘업무방해’ 혐의를 내걸어 주민 등을 범법자로 규정,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27일 오전 9시30분부터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 입구에서 ‘해군기지 공사재개 반대’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기자회견에 참석한 주민 및 시민사회·종교단체 관계자 34명은 오전 10시35분부터 경찰로부터 강제연행됐다.

현장에 투입된 서귀포경찰서는 기자회견이 허용된 시각인 10시가 넘자 “신고되지 않은 불법집회 및 업무방해 행위로 규정한다. 강제해산하라”며 주민 및 범대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범대위 측은 “정당하게 의견을 표시하는 기자회견을 불법 집회로 볼 수 없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자체 해산할 것이다. 공사를 막을 생각이 없다. 기자회견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경찰의 경고에 반박했다.

반박에도 서귀포경찰서는 속속 100여명의 전투경찰을 투입했고, 오전 10시35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을 현행범으로 규정, 체포를 명령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경찰은 즉각 기자회견단 앞에 앉은 현문권 신부 및 이정훈 목사 등 모두 5명의 종교인을 강제연행했고, 이어 10시43분경 기자회견에 참석한 4명의 주민 및 25여명의 범대위 관계자들도 현행범으로 규정해 강제로 끌고 갔다.
평화롭게 진행되던 기자회견은 경찰의 진압으로 순간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주민들의 격한 항의가 쉼 없이 오고갔다.

경찰의 강제연행 소식에 제주도의회 해군기지건설갈등해소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당초 11시로 예정된 해군특위 회의를 취소하고 급히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도의회의 늦은 방문을 강하게 비난했고, 현장에 있던 주민들 또한 달갑지 않은 도의원들의 방문에 거센 비판과 항의로 답했다.

특위 의원들은 주민들을 만나 명확한 상황을 들은 뒤 연행된 주민 및 범대위 관계자들의 법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강대일 서귀포 경찰서장과 면담에 나서는 등 대책마련을 위한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도의회의 때 늦은 대응에 주민들은 더욱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과 경찰의 충돌과정을 애초에 중재하지 못한 도정과 도의회에 대한 책임론이 도민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강동균 회장은 주민 강제연행을 사실상 방기한 도정과 도의회에 항의하기 위해 조만간 도의회 청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강제연행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범대위와 주민들은 “절대보전지역 해제에 대한 판단은 대법원에서 최종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해군측은 이번 판결을 승소로 받아들여 환경입장까지 밝히며 공사강행에 나서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국가사업은 국가 스스로 정당성을 강조하는 만큼, 더욱 법절차에 충실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와 해군의 밀어붙이기식 강행을 강력히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절차와 합리를 존중하는 자세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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