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일(JDC 이음일자리 오름매니저).

꿈에 그리던 취업이 이뤄져 5월 11일(금) 드디어 첫 출근을 하였다. 2018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음 일자리 사업’의 '오름 매니저'참여를 보고 4월 13일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 결과 4월 25일 1차 서류심사 합격되어 4월 27일 2차 면접을 거쳐 4월 30일 최종 선발되었다. 그리고 5월 2일부터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5월 9일 조 편성과 근무일을 확정 짓고 오늘 처음으로 근무지인 왕이메 오름에 간 것이다.

34년 직장생활, 그 후 비록 짧았지만 자영업을 하다 접은 뒤 쉬면서 취미활동과 그간 배우지 못한 공부하러 쫓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어딘가 허전하고 서운하였다. 그건 조금이나마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알고 부딪혀 보았지만 나이 때문에 1차 모집에서는 신청조차 받지 않았다. 추가 2차가 있다기에 무조건 신청하여 가까스로 통과되었으니 歡呼雀躍(환호작약)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첫 출근 날, 들뜬 마음으로 아침 6시 기상하여 세수하고 아침을 먹은 뒤, 점심으로 어제 사 놓은 빵과 커피 등 간편식을 챙겨 8시 전에 집을 나섰다. 가는 도중에 같은 팀원 집에 들러 차에 태우고 아덴힐 CC 쪽으로 천천히 몰았다. 그래도 내비게이션보다 거리와 시간이 단축된 8시 38분에 오름 입구에 도착하였다. 다른 팀원들도 골프장 입구에서 함께 만나 동시에 도착하였다. 우선 트렁크에서 등산화를 꺼내 갈아 신고 스틱 길이도 조정하였다. 그리고 유니폼인 파란 모자와 조끼를 걸치고, 하얀 쓰레기봉투를 손목에 걸친 채 양손으로 스틱을 잡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가본 왕이 메 오름은 교육받았던 내용, 자료를 통해 알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모두가 근무조건이 안 좋아 기피(?) 하는 곳으로 여겨진 휴게소와 화장실은 없고 더구나 햇빛을 가리는 그늘까지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행이 막상 오름에 당도하여 올라가 보니 계속되는 숲길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오히려 우리가 큰 선물을 받은 양 쾌재를 불렀다. 인적이 드물고 마땅한 휴게 벤치나 화장실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장님이 왕이 메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라 육지 출신인 나머지 우리들은 여간 다행히 아니었다. 우선 분지가 있다니 얼마나 깊은 지가 제일 먼저 궁금하였다. 마치 항아리 속에 들어가 하늘만 보인다기에 말이다. 올라가는 비고보다 내려가는 깊이가 더 한 거는 맞지만 많이 깊지는 않았고 분지가 넓어 독특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텐트까지 치고 유숙한다는 조장의 말이 맞는가보다. 분지 내를 이곳저곳을 빙 한 바퀴 돌아보니 군데군데 생수병 막걸리 병들이 나뒹굴고 있어 사람이 머문 흔적이 남아있고 볼썽사나웠다. 보이는 대로 뚜껑을 열어 이물질을 쏟아낸 뒤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분지에서 올라와 분지 둘레길을 돌아볼 요량으로 걸어 나가는데 역시 숲길은 계속되었다.

쭉쭉 뻗은 삼나무, 조릿대, 새우란도 가끔 보이고 편백나무도 있었다. 아직도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구별하지 못해 조장한테 물으니 잎이 다르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엔 편백나무는 공이가 많고 높이도 삼나무보다 크지 않았다. 도중에 수직 동굴을 두 곳이나 보았으나 그 깊이를 알 길이 없었다. 밧줄을 잡고 몇 분간 낑낑대니 정상이 나오며 사방이 확 트였고 가깝게는 한라산이 저만치 다가서고, 멀리는 산방산과 송악산이 아스라이 잡힌다.

이처럼 멋진 경관에 놀라고 소리치며 다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담느라 "여기! 저기!" 하며 서로 찍기 좋은 위치를 알려준다. 그렇게 행복감을 만끽한 채 좁다란 숲길을 지나는데 멧돼지 발자국(?) 같은 게 보여 갑자기 경계심이 바짝 들어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과연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절대 혼자 단독 시간 편성은 안된다고 조 편성할 때 강조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출발한 지점으로 한바퀴를 돌아와 쓰러진 나뭇등걸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휙! 휙! 소리 내며 시커먼 물체가 지나가 다들 깜짝 놀랐다. 아까 봤던 멧돼지 발자국이 떠올라 멧돼지로 알았는데 커다란 몸집의 젊은이가 아무런 인기척 없이 쏜살같이 앞으로 내 달리지 않는가? 가슴 쓸어내리고 하는 말 근무 첫날 두고두고 사람 멧돼지 얘기 거리가 생겼다며 쉬엄쉬엄 내려왔다.

입구 건너편 골프장 잔디밭 옆 숲속에 자리를 잡아, 그늘에 방석을 깐 채 푸른 잔디를 바라보며 도시락밥 김밥 빵들을 꺼내놓고 맛있는 점심을 즐겼다. 초여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담을 나누다 다시 오름길에 올랐다. 조장이 고사리가 많은 곳을 알려준다기에 따라나서는데 스틱 없이 입구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니 금방 조그마한 분지가 나왔다.

그곳 분지는 쓰레기가 비교적 없었으나 고사리를 꺾었는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많이 남았다. 이미 꺾이어 끝동만 남은 것, 이미 나와 피어버린 것, 나오다가 얼어버린 것등 여러 가지였지만 내 생전 처음으로 많이 끊었다. 황정종씨는 이미 많이 채취하였다며 나한테 주었다. 아내가 고사리를 좋아한다니 칭찬받을 일 하나 생겼다고 말하면서….

이곳은 호명목장 사유지로서 오후 5시까지 관람이지만 3시 반 이후로는 통제한다고 안내판에 쓰여있어 입구 도로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입구에서 지키다가 일지를 작성하고 5시가 넘자 자리를 정리하고 수요일에 다시 만날 것 약속하며 황종정씨와 함께 돌아왔다.

이로써 인생 3모작 첫날 일과를 무사히 그리고, 당당하게 마치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오랜만에 매우 감사하고 행복하게 보낸 멋진 하루였다.

이동일(JDC 이음일자리 오름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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