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조천포구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육지에 올려놓은 배와 포구에 정박해 있는 배 모습이 대조적이다. 오른쪽의 성담은 조천진성의 일부 성곽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배가 왕래하는 길을 제외하고 길게 돌담으로 파도를 막는 벙어벽이 설치돼 있다. 포구 뒤로 대다수의 초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초천포는 지금의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개낭
▲ 등산을 하던 사람들이 철쪽꽃이 활짝 피어 있는 곳에서 쉬고 있는 장면이다. 철쭉꽃은 5월 중순에서부터 한라산의 고도를 따라 피기 시작해 6월 중순경이면 '왕관릉, 장구목, 만세동산, 선작지왓, 영실' 일대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분홍빛으로 산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5월말 산악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철쭉제를 지내는데 철쭉제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철쪽꽃
▲ 제주도에 화물자동차가 등장해 자동차운수업을 시작한 것은 1932년 2월로 알려져 있다. 신형 시보레 화물차 1대가 들어와 화물 운수업을 했는데, 그때까지 우마차에 의존하던 화물 운송이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초창기에는 전기노선 없이 운송주문에 따라 운행됐는데, 요금은 1리를 기준으로 20근 이내 25전, 50근 이내 55전, 100근 이상은 100근 증
▲ 1960년대 초반에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를 붙잡은 모습이다. 무태장어는 뱀장어과에 속하는 열대성 물고기이다. 몸길이가 2m까지 자라는 큰 물고기로 몸은 황갈색 내지 암청색이며 배는 담색이다. 뱀장어와 비슷하나 암갈색 구름모양의 무늬와 작은 반점이 몸과 지느러미에 있다. 민물에서 5~8년간 서식하다가 깊은 바다로 내려가 알을 낳는다. 수중의 바위틈이
▲ 1940년대 바닷가 풍경으로, 해녀들이 바닷가에서 '듬북, 몸' 따위 등 해초를 공동으로 작업하는 모습이다. 왼쪽 아래쪽에 작은 거룻배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바다에서 따온 '듬북'이나 '몸' 등을 뭍으로 올려놓고 제각각 나누어 지게에 지고 갈 요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팔짱 끼고 구경하는 사람, 가마니때기를 허리에 대고 지게에 해초를 얹으려
▲ 1960년대 관덕정 동남쪽에 자리한 돌하르방이다. 길 건너편에는 경찰서 관사로 쓰였던 한옥이다. 이 돌하르방은 둥그스름하고 태가 뚜렷이 나타나는 모자를 쓰고 있다. 계란형 얼굴로서 긴 원통형 몸체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과 자루병 같은 코, 입은 일자로 곧게 다물었고, 오른손은 가슴 위에 올려 놓았다.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 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볕에 말린 절간고구마를 제주에서는 '감저뻿데기'라 한다. 절간고구마는 주정원료로 이용됐다. 고구마를 쌓아 놓은 곳에서 절단기로 고구마를 썰어 놓으면 아낙들이 썰어 놓은 고구마를 잘 말릴 수 있도록 우도의 풀밭에 뿌리고 있는 모습이다. 고구마 절단기는 손으로 회전판 절단기와 연결된 손잡이를 돌리는 방식의 절단기를 사용
▲ 전설과 신비, 꿈의 대향연을 테마로 한 제1회 칠선녀 축제가 1995년 4월1일 ~ 2일 중문 천제연 광장 일원에서 열렸다. 사진은 칠선녀 축제 개막에 맞춰 꽃으로 장식된 차량이 칠선녀를 태우고 중문 시가지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칠선녀 축제는 별빛 영롱한 밤이면 옥황상제를 모시는 천상의 선녀들이 내려와 천제연의 맑은 물에 목욕을 하고 하
▲ 1946년 1월 제주항 전경이다. 물결마저 고요해 뵌다. 그러나 겨울의 항구는 스산하다. 육지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들이 시용했던 '구르마'가 보이고, 주정공장 위쪽에는 군데군데 집들이 보인다. 이 사진은 미군정 문교부장인 유진 크네즈(Eugene Knez) 박사가 조선민속학회 송석하 선생 일행과 함께 제주도 민속 연구를 위해 내도했을 때 촬영한
▲ 방사탑(防邪塔)은 해안가나 마을의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친다거나, 한 지형이 허기(虛氣)가 감돈다는 풍수지리 속신에 따라 동네 사람들 공동으로 마을의 태평무사를 빌기 위해 쌓아놓은 돌탑이다. 원뿔형 사다리꼴 등으로 탑을 쌓고, 맨 위에는 새 또는 동물모양이나 장대, 사람 모습의 석상을 얹혀 놓는다. 탑의 높이는 반드시 사람의 키보다 높아야 한다는
▲ 1960년대 북쪽에서 본 모슬포 포구의 모습이다. 이 포구의 지형적 조건은 매우 좋지 않다. 수심도 얕고 화산암의 암초도 많았으며 여기에다 빠른 조류가 항구 바깥을 흐른다고 했다. 항해업자들은 이 지방 일대의 바다를 '마의 바다'라고 부르면서 이 항구에 입항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축항 안이라고 해도 암초가 많고 또 수심이 얕아서 배 밑이 물에 잠기는
▲ 간호학교의 실습장에서 실습에 열중하는 간호사들의 모습이다. 4명의 간호사들이 간호사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측정 결과를 기입하고 있다. 그 뒤의 진열장에는 각종 약품들이 놓여 있으며, 그 옆으로는 키는 재는 신장계가 보인다. 1968년 3월4일 제주도립병원 병설간호전문학원(교)이 개원했으며, 이 당시 간호학원생은 3년간의 교육을
▲ 관덕정과 서문로터리를 잇는 서문로 확장사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한쪽에는 도로에 저촉된 초가를 헐어내고, 건너편에는 시멘트 고층건물을 건립하기 위한 골조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노송 몇 그루가 보이는 제주향교가 건물에 가려져 있다. 서문로는 서회선 시외버스가 다니는 유일한 길이면서 당시에는 제주중학교와 제주상업고등학교가
▲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든 아이들 모습이다. 자신 있는 표정과 휑한 표정이 교차한다. 가운데 한 학생은 V자 둘로 보이게 손가락을 포개어 손을 들었다. 앞니도 빠져서 다른 아이들한테 "앞늬 빠진 고넹이(고양이) 뒷늬 빠진 고넹이 우리 앞 담 머리고(헐고) 어디 도망 감시니(가느냐)"라는 놀림을 받았을 것 같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 해녀복을 입어야만 해녀는 아니다. 바닷가에 사는 여인들은 언제나 바다와 더불어 살아간다. 제주여인들의 삶은 늘 고달팠다. 용천수가 나오지 않아 물이 귀한 중산간마을의 여인들은 아침밥을 짓기 전에 한참을 걸어 냇가나 마을공동의 우물에 가서 허벅으로 한 두번 물을 길어 나른 뒤 밭일 하러 나간다. 반면 용천수를 비교적 구하기 쉬운 해안마을에서는 새벽에 깨어
▲ 1952년 7월7일 간호사 오명덕이 제주도의 고아원 양호실에서 김정숙 어린이의 오른쪽 팔꿈치에 생긴 피부병을 UNCACK가 소장한 공급품으로 치료하고 있다.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걱정 말라고 하면서 다독여 주고 있다. 지켜보는 아른 아이들은 두려움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 보고 있다. 간호사 모자, 간호사복이 특이하다.(클리프턴 루이스 사진, 미 국립문
▲ 해녀들이 물질 작업을 모두 마치고 각자가 채취한 해산물을 뭍으로 끌어올리거나 져서 나르고 있다. 한 남정네는 해산물을 끌어올려 정리하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촐구덕(허리에 차는 바구니)'을 허리에 찬 아이는 고둥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이렇듯 바다는 섬사람들의 또 다른 공동체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에서 발
▲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유명한 옛 제주대학 본관 건물. 일명 헬리콥터 건물로 알려진 이 사진은 1960년대 초 장시영 원장(당시 장시영산부인과원장)이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당시 제주대학 김모 학장을 만나러 갔다가 건물 앞에서 여학생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지은 지 얼마 안돼서인지 건물이 깨끗하며 건물 위쪽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
▲ 1960년대 서귀포항 모습이다. 썰물 때의 서귀부두 선석에는 여러 척의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다. 물양장의 닻 매는 말뚝에 어부로 보이는 남자가 다리를 꼰 채 한가로이 앉아 있다. 그 옆에는 고무신을 신은 노인이 바다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그 뒤로는 웅장한 해안절벽이 항구와 대조를 이루면서 서귀포항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서귀포항 주변에는 섶섬,
▲ 1951년 3월19일 제주기독교청년회 창립총회를 마치고 회원들이 제주동부교회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과 두루마기가 이채롭다. 기독교청년회의 운동 이념은 1855년 8월22일 세계기독교청년회연맹 창립총회에서 채택되고, 1955년 8월 세계대회에서 확인되었는데, 그 이념의 기준은 "기독교청년회는 성경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